19세기 초 교과서의 탄생은 학교의 등장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학교는 국가의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갖춰야 할 능력과 알아야 할 지식을 교육하고자 기획된 장이다. 정부가 그 능력과 지식을 무엇으로 보느냐가 교육의 내용을 결정했다. 교과서의 내용도 여기에 달렸었다.
이 시기의 교과서는 정치와 깊이 결부되었다. 교육을 시행하고 교과서를 보급하는 주체는 정부였기에, 어떤 권력이 패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국민이 알아야 할 내용은 변화를 겪었다. 발맞춰 교과서의 내용도 조정되었다. 교과서는 기득권의 가치를 전달하는 매개체였고 그들만의 ‘바람직한’ 사고방식은 대중에게 주입되었다.
여기까지는 교과서가 정치와 관계 맺던 반세기 전 이야기다. 21세기를 사는 교과서의 입장에선 해묵은 옛날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이 권력의 객체이던 신민에서 권력의 주체인 시민으로 거듭나면서 교과서의 역할이 변했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기득권의 가치를 전달하는 수단에서 다양한 의견과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매체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발달에 따라 교과서의 양상이 달라져왔다면, 교과서는 사회를 형성하는 도구임과 동시에 그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미래를 가리키는 표석이 아니라 현재를 보여주는 창이다. 특히 다음의 두 가지 면에서 그렇다.
첫째로 교과서는 한 사회의 권력구조를 보여준다. 여러 교과서가 발행된다는 사실은 그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며 특정 세력이 교육내용을 독점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OECD 회원국 전원이 여기에 속한다. 반대로 한 종의 교과서만 승인하는 북한은 그 사회에서 특정 세력의 사고방식만이 용인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교과서는 권력구조를 창출하기 이전에 이미 이를 보여준다.
둘째로 교과서의 내용은 한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를 보여준다. 법치국가에서 통용되는 교과서가 헌법적 제한을 넘어선 행위를 한 인물을 긍정적으로 묘사할 리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된 역사에 대해 비판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교과서는 사회적 가치를 환기하기 이전에 이미 반영한다.
그렇다면 교과서를 통해 바라본 한국은 어떤 사회인가. ‘아직’ 검정제를 채택하고 있으니 다양한 의견이 인정되는 사회다. ‘아직’ 반-헌법적 사건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하니 법치국가다. ‘아직’ 독재를 미화하진 않으니 민주주의 사회다.
최근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한다. 국정교과서가 가져올 미래도 두렵지만 그 교과서가 반영할 현재가 더 두렵다. 국정교과서의 탄생은 복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니다. 그 자체로 우리 사회가 이미 충분히 퇴보했다는 징후다. 착상부터 이미 그렇다.
뉴스타파. 사진/바람아시아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