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손효주기자] 경찰과 노조원이 10일 가까이 일촉즉발의 대치를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언제 유혈 충돌이 일어날 지 모르는 팽배한 긴장감이 감도는 이 곳에서 공장 안의 노조원들보다 더 많이 긴장하며 하루 하루를 애 태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도장공장 옥상 위에서 위험천만한 농성을 하고 있는 남편을, 아들을, 그리고 아빠를 멀리서나마 바라보며 노심초사하고 있는 노조원 가족들이 그들이다.
“여기 나와있는 엄마들이 다 그래요. 매일 같이 집에 있으면서 땀에 절은 작업복 빨아주고 출근 시킬 때는 자주 싸우고 그랬는데 지금 몇 달 떨어져 있으니까 부부애가 더 좋아졌다고요. 우리 남편은 경상도 사람이라 사랑한다는 말 잘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요즘은 공장 안에서 근무서면서 전화와서는 ‘사랑한다, 여기서 나가면 정말 잘해줄게’ 그래요.”
노조원 가족들이 모여있는 쌍용차 정문 앞의 한 천막 안에서 만난 김희진(40)씨는 헬리콥터가 뿌려댄 최루액이 콧속을 연신 시큰거리게 만드는 상황에서도 미소만은 잃지 않았다.
그의 남편은 15년간 쌍용차 평택 공장 생산직에서 일하다 정리해고를 당한 노조원이다. 그는 이날도 30도가 넘는 무더위로 푹푹 찌는 옥상위에서 고스란히 햇볕을 받아가며 농성 중이었다.
이날 도장공장 옥상 위에서 열린 확성기를 이용한 기자회견을 정문 밖에서 지켜보던 그는 혹시라도 남편이 자신을 볼까 노조를 응원하는 피켓을 들고 남편을 향해 웃는 얼굴로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뉴스에서 경찰들이랑 노조원이랑 막 싸우는 장면이 나오니까 우리 셋째가 텔레비전 앞에서 펑펑 울더라고요. 그러면서 아빠한테 문자를 보내요. ‘아빠, 투쟁하세요’라고요. 애들이 셋인데 어린 것들이 뭘 알기는 하는지 요즘 투쟁이라는 말이 입에 붙었어요. 정말 투쟁을 하는 몇 달 사이에 아이들이 부쩍 커버린 느낌이에요. 이런 일로 철이 들어버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져요.”
그는 “앞으로 남편을 만나는 날까지 하루에 열두시간씩 천막과 정문 앞을 지킬 것”이라며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남편을 생각해 하루에 한 끼만 먹으면서 정문 밖에서 함께 투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물과 가스가 끊기면서 사측에 맞선 투쟁과 함께 주먹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생존을 위한 투쟁도 해야만 하는 노조원들. 이날 노조원들이 ‘옥상 기자회견’을 열자, 멀리서라도 가족을 보려는 노조원 가족들이 속속 모여들어 ‘힘내세요’ 등의 응원 구호를 큰 목소리로 외쳤다.
‘쌍용차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던 한 여성은 농성 중인 아들을 향해 이미 쉬어버린 목소리로 “제발 살아만 있어라”라는 당부를 외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방학을 맞아 휴가를 떠나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쌍용차 정문 앞으로 휴가 아닌 휴가를 온 노조원의 아이들은 멀리서나마 작게 보이는 아빠를 향해 제각각의 응원 메시지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이를 본 노조원들 역시 아이들을 향해 크게 팔을 저었다.
이렇듯 쌍용차 정문 밖에서는 노조원의 가족들이 애 태우며 벌이는 ‘또 하나의 투쟁’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노사는 여전히 ‘네 탓’ 공방만으로 시간을 끌며 대화의 자리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정부는 구조조정 없이는 지원도 없다는 확고한 태도를 고수한 채 사실상 수수방관이다.
경찰력이 대폭 증강 배치된 이후 3주 넘게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있는 노조원들. 영상통화 대신 직접 가족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바람은 한결같지만 옥상 위의 노조원들과 정문밖의 가족들이 얼굴을 맞댈 날은 이제 누구도 기약할 수 없는 일이 돼 버렸다.
뉴스토마토 손효주 기자 karmar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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