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은행의 대출로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기업'을 정리하는 은행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지 보름이 넘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다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페널티를 없애는 식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할지, 기존에 없던 인센티브를 신설할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올해안에 구조조정을 마무리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은행들을 재촉하고 있지만 정작 은행권에게 면죄부인 기업여신 심사 인센티브 논의는 미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2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은행권과 첫 미팅을 갖고 기업여신 평가 시스템과 한계기업 정리 유도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 방안 등을 검토했다.
지난 28일 모임은 '여신심사 선진화 테스크포스(TF)'가 구성된 이후 이뤄진 첫 미팅이다. 지난달 13일 금융위는 은행권과 함께 여신심사 선진화 TF를 만들어 좀비기업을 정리하는 은행에 인센티브를 주는 안을 내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손충당금 부담으로 좀비기업을 솎아내는 데 소극적인 은행들에 유인책을 제공하겠다는 의도였다. 은행이 돈을 빌려준 기업이 좀비기업으로 판명나면 대손충당금이 늘어나 비용 부담이 커진다.
이 때문에 채권 은행들은 금융권이 주겠다는 인센티브가 무엇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은행에 주겠다는 그 인센티브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청사진이 마련되지 않았다.
TF에 참여한 은행권 관계자는 "어떤 인센티브 결과가 나올지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한 주에 한 번씩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로 했다. 다름 만남 일정이나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나온 것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연내 좀비기업 구조조정을 목표로 기업 여신 평가 시스템을 점검하고 인센티브 제공 논의를 진행 중이다. 사진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의 모습. 사진/뉴시스
인센티브가 기존의 페널티를 없애는 것인지, 인센티브 혜택을 새롭게 부여하자는 것인지도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먼저 금융위에서 구상 중인 인센티브는 은행 직원이 어떤 기업을 부실기업이라고 표시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다. 현재는 은행지점 여신 담당 직원이 책임지고 모 기업에 돈을 빌려주기로 했는데, 그 기업이 부실기업으로 드러나면 해당 은행 직원이 문책을 당하는 구조다.
금융위 TF 관계자는 "디스인센티브(패널티)를 없애는 것이 우선이 될 것"이라며 "인센티브는 신설 여부는 더 논의를 거쳐야 할 듯 한데, 두어 달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센티브 도입 시기가 이처럼 늦어지면, 연내 좀비기업 구조조정 목표가 공염불에 그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대출과 보증으로 연명하는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올해 안에 최대한 완료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상태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인센티브가 적용된다 해도 은행이 부실기업 정리에 적극적으로 나설지도 미지수다.
은행권은 금융감독원이 11월 중에 중소기업 중 부실기업 리스트를 발표하면 그걸 토대로 A, B, C, D 등급을 나눠 한계기업 정리에 들어간다. C등급은 워크아웃, D등급은 퇴출 수순을 밟게 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인센티브를 줘서 좀비기업 퇴출을 유도한다지만 한꺼번에 퇴출 기업이 많아지면 충담금 부담이 크다"며 "우리는 이미 구조조정 부서를 두고 한계기업을 관리하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