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신임 비서실장 나승기씨에 대해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변호사 참칭'에 따른 변호사법 위반 고발을 결정한 가운데, 결과적으로 신동빈 회장 측의 롯데그룹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3일 롯데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는 나씨를 직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고발 여부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나씨가 신 총괄회장의 비서실장으로 언론에 보도돼, 바깥에서는 나씨가 롯데 직원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나씨는 (롯데의) 직원도 아니고 채용된 적도 없다"며 "변호사 사칭을 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처벌받을 것이고, 그것은 변호사단체가 결정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나씨에 대해 형사처벌 요구 의사를 밝혀온 쪽은 롯데그룹의 한국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다. 서울변호사회에 따르면 호텔롯데는 지난달 30일 "나씨를 처벌해달라"는 취지로 공문을 작성해 서울변호사회에 답신했다.
이는 서울변호사회가 나씨의 변호사법 위반 관련 해명을 호텔롯데측에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있는 호텔롯데 측이 직접 고발할 수도 있다. 변호사법 위반죄는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형사처벌 요구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는 대목이다.
서울변호사회는 나씨의 소명을 받기 위해 공문을 보낼 곳을 고심하다가 나씨가 보좌하는 신 총괄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호텔롯데에 해명 공문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나씨에 대해서는 일본 게이오대와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로 소개된 것 등 외에 소재지 등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호텔롯데에 보내진 해명 요구서는 나씨에 전달되지 않았다. 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측 인물인 호텔롯데 직원에게 전달돼 작성됐다.
나씨에 대한 소명서에 나씨를 비서실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롯데그룹측의 의사가 반영된 셈이다.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나씨는 지난 2일 법무법인 두우를 통해 "스스로 변호사라고 소개한 적이 없으며, 홍보실측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내용의 소명서를 서울변호사회에 별도로 전달했다.
이처럼 양측의 서로 다른 해명을 전달받은 서울변호사회는 3일 오전 10시 예정대로 상임위를 열고 나씨에 대한 변호사법 위반 여부를 검토했고, 회의를 시작한지 2시간 가까이 지난 끝에 고발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변호사회는 나씨에 대한 제재를 추후일자로 미룰지, 예정대로 진행할지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롯데그룹 경영권을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는 신 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 사이에서 어떻게 중립을 지키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나씨에 대한 롯데그룹 차원의 움직임이 없는 상황에서 서울변호사회는 형사고발을 결정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변호사회는 롯데의 집안 싸움과 관계 없이 "국내에서 변호사 자격 없이 활동하는 외국법자문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는 "나씨에 대한 형사고발 결정에 대해 내·외부의 비판을 우려해 망설임 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법률시장 개방 전 외국법 변호사 문제가 많고, (법률서비스 소비자 등) 피해를 고려해서라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변호사회가 나서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서울변호사회는 다음주 나씨에 대한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낼 계획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좌)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우).사진/뉴시스
방글아 기자 geulah.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