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실명확인, 첫 금융거래자는 제외…반쪽짜리 '핀테크' 전락

은행권 표준 가이드라인 내달부터 적용…사실상 기존계좌 보유자만 대상

입력 : 2015-11-05 오후 6:21:39
다음달부터 은행 계좌 개설시 은행창구를 찾지 않아도 되는 비대면 실명 확인이 시행되지만 생애 첫 금융거래를 시작하는 고객들은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서둘러 성과를 내기 위해 당초 누구나 가능한 비대면 실명확인 방법을 포기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금융개혁의 핵심 과제 중 하나였던 비대면 실명 확인이 반쪽짜리 핀테크 성과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은행권을 주축으로 구성된 비대면 실명확인 TF가 다음주중으로 신분증 사본과 기존계좌 활용 등을 중심으로 한 비대면 실명확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TF 관계자는 "당장 다음달부터 도입이 가능한 본인확인 방식에 대해 논의를 했는데 기존계좌 활용이나 신분증 확인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생애 처음 계좌를 개설하는 고객들은 영업점을 방문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월 금융위원회는 신분증 사본 제시, 영상 통화, 현금카드 전달, 기존 계좌 활용 등 가운데 2가지 방법을 중복 확인하고, 금융회사가 자체적으로 선택한 확인 방식을 추가할 경우 비대면 인증을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위 방침대로라면 예컨대 금융사가 비대면 실명확인 방식을 신분증 사본 제시와 영상통화를 선택하고, 금융회사의 자체 확인 방식을 추가하면 생애 첫 금융거래자들도 은행을 방문하지 않고도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행들은 개별 회사들이 우후죽순 다른 수단을 사용하면 고객 불편과 중복투자 우려가 있어 여러 방식들 가운데 가이드라인이 될 만한 방식을 논의해왔다. 그 결과 은행들은 당장 현실성이 높은 부분에서 신분증 사본확인과 기존계좌 활용에 중점을 둔 것이다.
 
기존 계좌 활용이란 A은행과 거래하는 고객이 B은행에 신규 계좌를 신청할 경우, B은행이 금융결제원을 통해 해당 고객의 A은행 계좌 유무를 확인한 뒤 고객에게 B은행 계좌로 소액 입금을 받아 본인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은행권 TF는 이같은 방안을 표준 가이드라인으로 정하고 금융위원회에 '실지명의 확인시 대면으로 실명 확인해야 한다'는 금융실명법 유권해석을 신분증 사본 확인을 포함한 복수의 방식을 거쳐 비대면 실명 확인을 할 수 있도록 유권해석 변경 의뢰를 넣을 예정이다.
 
반면, 은행권 TF에서 이같은 표준 가이드라인 정해질 경우 비대면 실명 확인이 반쪽짜리 핀테크 성과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실상 생애 첫 거래가 가능하도록 하는 생체정보 인증이나 영상통화 등 새로운 인증 기술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는 생체정보 인증이나 영상통화 등 새로운 인증기술이 제외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명확인에 준하는 기타사항'을 마련해놨기 때문에 은행들이 별도로 도입하는 본인확인 시스템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용 문제에 얽혀 있는 은행들과 보안편의성을 이유로 기존 매체를 고집한는 금융당국의 합의에 따라 다른 실명확인 시스템이 추진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기존계좌를 활용하면 되는데 굳이 돈이 들어가는 새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들이 현재 지문이나 홍채, 정맥 등 생체정보를 활용한 본인인증을 준비중이나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시스템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생체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전 등록돼 있는 정부기관과 협의가 돼야 한다.
 
당초 금융당국은 비대면 실명 확인 허용으로 '집이나 직장에서 은행 계좌를 열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기존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생애 첫 금융거래자는 사실상 제외되면서 반쪽짜리로 전락한 것이다.
 
더욱이 영상통화 등 핀테크 기술이 등한시되면서 명의 도용이나 대포 통장 개설 루트로 사용될 우려도 계속 나오고 있다. 신분증 사본 확인의 경우 위변조나 도용된 신분증 사본이 쓰일 수 있으며, 기존계좌 활용 등을 복수로 하더라도 강제성 없이 본인 의사로 계좌를 만드려는지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비대면 거래 활성화로 핀테크 산업 활성화를 꾀하자는 취지였으나, 금융사는 결국 비용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고 금융당국은 제도만 풀어넣고 금융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미뤄놓으면서 결국 생색내기용 대책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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