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막무가내 권력의 미래

입력 : 2015-11-13 오전 6:00:00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버마가 깨어났다. 버마 독립운동의 영웅 아웅 산의 딸로, 민주화의 상징이 된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야당이 군부독재 정권에 압승을 거두었다. 캐나다의 10월 총선 결과도 화제였다. 부자증세와 보편복지를 앞세운 자유당이 승리하면서 내각수반이 된 43세의 쥐스탱 트뤼도가 훤칠한 외모로 세계인의 이목을 끌더니, 10명의 무슬림 의원과 10명의 원주민 의원이 사상 최초로 등원한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쥐스탱도 17년간 캐나다 수상을 지낸 피에르 트뤼도의 아들이다.
 
연이어 발표된 트뤼도 내각은 찬탄을 일으켰다. 남녀 각 15명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룬 내각 구성원들의 면면은 실로 경이로울 정도다. 체육장관은 장애인올림픽 선수 출신의 시각장애인이고 보훈장관은 참전 중 적에게 총격을 받아 팔과 다리에 장애를 입은 사람이다. 국방장관은 인도에서 이민 온 시크교도로서 아프간에 참전한 전쟁영웅이며 30세의 여성인 민주제도장관은 아프간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난민 출신, 사회개발장관은 빈곤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 과학장관은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 과학자, 교통장관은 우주인 출신이다.
 
그 뿐이 아니다. 환경부는 '환경 및 기후변화부'로, 이민부는 '이민 및 난민부'로 이름을 고쳤다. 게다가 두 명의 장관은 원주민이고 세 명은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시크교도가 두 명, 무슬림이 한 명, 무신론자 두 명이 있으며 한 명은 유방암환자, 한 명은 게이라고 밝혔다.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무지개 내각이 세계만방에 그 아름다움을 뽐낸 것이다.
 
"남녀 균형을 맞춘 이유가 뭐냐"는 기자의 우문에 트뤼도 총리는 "2015년이잖아요"라는 현답을 남겼다. 이처럼 그의 첫 인사는 역사의 발전과 미래의 전진을 응축하고 있다. 그러니 인터넷에는 한껏 고조된 캐나다 국민들의 자긍심과 타국민들의 부러움이 넘쳐난다.
 
이처럼 새로운 리더쉽으로 새세상을 이루어 가는 나라들이 있는데 우리의 2015년은 국정교과서와 함께 나치와 일제, 유신으로 퇴행한다. 오늘의 버마에 비견되는 우리의 빛나는 성취가 세계적 찬사를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3.1운동과 4.19 의거, 그리고 저 찬란한 6월 항쟁의 역사다. 그러니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자랑하는 역사를 자학사관으로 매도하는 것은 친일과 독재의 자식이란 자백에 불과하다.
 
아버지의 과거에 얽매여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무시하거나 외면하고, 제대로 파악하여 풀어낼 능력이 없으니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는 황당한 발언이 나온다. 여론이 어떻든 오로지 자신과 아버지만을 진실의 준거로 삼으니 다른 의견은 척결과 심판의 대상일 뿐이다. 교과서의 역사왜곡 부분을 묻자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고 답하고, 이젠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로 웃음거리가 된다. 이렇게 '우주, 기운, 혼'을 앞세운 제사장적 마인드가, 공주님 비판이라면 "어떤 설명을 해도 듣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과 결합하니 과거에 대한 억지와 미화만 남게 마련이다.
 
태종실록엔 그 서슬퍼런 이방원 앞에서 '신이 만일 곧게 쓰지 않는다면 위에 하늘이 있습니다'며 대든 사관의 굳센 기개가 그대로 기록돼 있다. 진실을 위해 선대의 사초를 후대의 왕이 보지 않는 원칙을 확립하고, 사관들의 직필을 보장하는 안전장치를 두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이렇게 망가지고 있다. 그러니 막무가내 권력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영국의 언론인 조너선 펜비(Jonathan Fenby)가 쓴 「장제스 평전」이 떠오른다.
 
"그는 동포들의 생명을 경시하고 공산당 소탕을 항일투쟁보다 상위에 둔 반동적이고 권위적인 독재자였다. 그는 경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한 국가를 고무하는데 필요한 대중운동을 깊이 의심하는 질 나쁘고 무능력한 행정가였다. 그는 파벌 갈등을 조장하며 이를 악용하고 사람을 쓸 때 업적보다는 충성도를 중시했다. 그가 부패와 도덕성 부재에 눈 감은 것은 정부의 와해를 부채질했다. 그는 최고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권력 투쟁을 벌인 인물로 자기 자신을 바로 중국을 운명적으로 잃어버린 자로 만들었다. 병적일 정도로 그는 낡고 케케묵은 사상을 죽을 때까지 추구했다."
 
나는 장제스에 대한 평가에서 세월호를 보고 통합진보당 해산을 떠올리며 고영주와 이인호를 기억한다. 능력과 지성의 부재, 대중운동에 대한 깊은 의심까지 꼭 빼닮은 어떤 이를 떠올리며 십상시와 윤창중, 유승민을 기억한다. 장제스는 펜비의 책에서 "적과의 대규모 최후 결전 없이 종말을 맞았다"고 기록되었다. 과연 종말은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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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