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한 대규모 연쇄 테러가 발생한 가운데, 국가정보원에 ‘대테러 컨트롤타워’ 임무를 부여할지 여부가 여야 간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권은 더 이상 우리나라도 ‘테러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국정원에 힘을 몰아줘 만약의 사태에 사전 대비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권은 과거 불법사찰, 정치개입 논란 등에 연루됐던 국정원에 지나친 권한을 주는 것은 위험하다며 경계심을 내보이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18일 테러방지종합대책 당정협의를 갖고 ▲내년도 대테러 예산 약 1000억원 증액 ▲국회 계류 중인 대테러법안들의 조속한 통과 ▲대테러 대비 컨트롤타워를 국정원으로 일원화 등에 의견을 모았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야당은 국정원 권한 집중을 이유로 무조건 테러방지법에 반대한다. 파리 테러를 보고도 국정원 힘빼기나 하려고 해 답답하다”며 “이번 파리 테러는 다른 나라 일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진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전체회의에선 국정원이 2010년 이후 국제 테러 조직과 연계됐거나 테러 위험인물로 지목된 국내 체류 외국인 48명이 강제 출국됐다고 밝히며 우리나라가 더 이상 ‘테러 무풍지대’가 아님을 강조했다.
정보위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에 따르면 국정원은 IS가 지난 9월 간행물을 통해 우리나라를 소위 ‘십자군 동맹’ 62개국에 포함시켜 테러 대상국으로 명시했으며, 국내에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IS에 동조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특히 이병호 국정원장은 “(내국인) 10여명이 인터넷상에서 공개적으로 IS를 지지한 것을 적발했지만, 관계 법령의 문제로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테러 위험인물의 통신정보나 개인정보를 국정원이 수집 가능케 할 법안통과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이철우 의원은 “테러방지법을 만들어줘야 계좌추적도 하고, 금융거래도 알 수 있고, 통신제한조치를 할 수 있다”며 “이런 조치를 할 수 없으니 위험인물이 국내에 있어도 조치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테러방지법뿐만 아니라 동시에 감청할 수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계좌추적이 가능한 특정금융거래정보법(FIU법), 사이버테러방지법까지 4개법을 제정·개정해야한다는 것이 우리 당의 입장”이라고 소개했다.
반면 신경민 의원은 “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법은 국정원 강화법”이라며 “정보기관이 (대테러전에) 핵심역할을 하는 것은 동감하지만 모든 것을 통괄하는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은 야당이 절대 수긍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신 의원은 “정보기관이 컨트롤타워를 맡는 게 맞는지, 사례가 있는지 연구해 제대로 된 법을 만들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현재 국정원이 신뢰받을 수 있나. 댓글사건 뒤 국정원이 과연 달라졌다고 볼 수 있는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정의당도 논평을 내고 “우려되는 것은 최근 파리 테러 참사로 인한 국민의 순수한 분노를 대테러방지법 등 국정원을 강화하는 것에 악용하려는 새누리당의 움직임”이라며 “대테러방지법은 인권 침해 등 위헌요소가 끊임없이 지적되어온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한창민 대변인은 “어떻게든 파리 테러 참사와 대테러방지법을 연관 지어 공안통치를 강화하려는 새누리당의 뻔뻔한 속내가 보인다”며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려는 이런 시도는 너무도 파렴치한 짓”이라고 질타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호영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국정원에서는 이병호 국정원장(멀리 보이는 가운데) 등이 출석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