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철학자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사회구조를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로 나눴다. 물질적, 경제적 기반인 하부구조(infra-structure)가 제도, 문화인 상부구조(super-structure)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부구조는 자본가인 부르주아로 대표되고 하부구조는 부르주아에게 노동을 제공하는 프롤레타리아트로 대표된다. 마르크스는 19세기 언론기관을 정치기구로서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에 귀속 돼 있다고 봤다. 언론은 상부구조 내에서 단순히 부르주아지의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로서 기능하며, 하부구조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계급과 착취당함을 깨닫지 못 하도록 작용한다. 말하자면 언론은 학교나 교회 또는 정부기관과 마찬가지로 사회통제의 대리인인 셈이다.
마르크스는 사회문제를 진단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이러한 체제를 뒤엎을 수 있는 ‘이상언론’의 모습을 제시했다. 그의 이상언론에 따르면, 언론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교육의 도구이자 혁명의 선동가로 기능해야 한다. 자유로운 언론은 사회의 파수꾼으로서 권력자에 대한 끊임없는 고발자의 역할을 해야 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고 봤다. 즉, 상부구조에서 만들어진 체제 유지를 위한 언론은 없어져야 하고, 하부구조에서 새로운 ‘이상언론’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논점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제시한 이상언론은 정말로 실현 가능할까?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운영하는 ‘뉴스펀딩’에서 ‘이상언론’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뉴스펀딩은 독자가 자신의 마음에 드는 기사를 후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뉴스 서비스로, 포털 다음이 2014년 9월 국내에서 최초로 시작했다. 뉴스 생산자가 독자들에게 특정 주제와 사안에 대해 공지를 하면 그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후원을 하고, 뉴스 생산자들은 이 후원금을 사용해 주제에 맞는 뉴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 골자다.
사진/바람아시아
뉴스펀딩의 수용자는 쌍방향적이고 능동적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기사를 뉴스펀딩에 사전에 알리면, 뉴스의 수용자가 생산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존의 매체에서는 전화나 이메일 등을 이용한 제보만이 이루어졌는데, 뉴스펀딩을 도입함으로써 수용자가 직접 뉴스를 주문할 수 있게 됐다. 기성언론의 운영방식에 비하면 굉장히 혁신적인 변화다. 또, 뉴스제공자의 입장에선 광고주와 같은 자본의 입김으로부터 자신들의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뉴스펀딩을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자본이 하부구조에 속해 있는 수용자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인데, 이는 마르크스가 주창했던 자유로운 언론을 추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사실 다음 뉴스펀딩이 처음 시행됐을 때 ‘사람들이 돈을 낼만큼 관심을 가지겠냐’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를 금세 불식하고 후원금 25억 원을 누적하면서 10만 명 넘게 참여한 크라우드 펀딩('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뜻으로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등의 온라인 매체를 통해 자금을 모으는 투자 방식) 서비스로 성장했다.
다양한 탐사보도. 사진/바람아시아
뉴스펀딩은 마르크스가 이상적인 언론의 역할로 지목한 탐사보도를 충실히 해냈다. 뉴스펀딩의 박상규 기자는 ‘그들은 왜 살인범을 풀어줬나’라는 기획 하에, 살인 누명을 쓴 15살 소년의 사연, 진짜 범인을 풀어준 대한민국, 진범을 체포했음에도 좌천당한 어느 형사의 분노 등을 보도했다. 이 기획은 103일 간 5,627 명이 참여해 애초의 목표이던 2000만 원을 훌쩍 넘은 4000만 원의 후원금을 모았다. 이 외에도 감정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우리 엄마의 감정노동 이야기’ 등이 사회 비판적인 탐사보도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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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녀는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라는 기획은 일명 ‘김신혜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뉴스펀딩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김신혜 사건'은 지난 2000년 3월 7일 새벽, 그녀의 아버지 김 모 씨가 전남 완도군의 한 버스 승강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 한 지 하루 만에 첫째 딸 김신혜 씨를 피의자로 체포했다. 수사기관은 김 씨가 보험금을 노리고 수면제를 탄 술을 아버지에게 먹여 살해한 뒤 뺑소니 교통사고로 위장했다고 말했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김 씨의 자백 증언 외에 유죄를 입증할 제대로 된 물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0년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 씨는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여러 차례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 호소에 누구도 귀 기울여 주지 않은 채 사건은 종결되고 말았다.
김신혜 씨의 사연이 뉴스펀딩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되자,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당시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된 것들은 현재 판례에 따르면 위법수집 증거’라는 이유로 지난 1월 28일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결국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은 무기수 김신혜에 대한 재심을 개시하기로 지난 18일, 해남지원 법정에서 직접 발표했다. 그 동안 법원이 재심개시 여부를 서면으로만 발표해온 것과 비교 할 때, 이번 발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김신혜 사건’에서 본 것과 같이 뉴스펀딩의 ‘탐사보도’는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줌으로써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뉴스펀딩이 마르크스가 말한 ‘이상언론’을 완벽히 실현했다고 하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뉴스펀딩의 플랫폼을 제공하는 주체가 사회의 상부구조에 속해 있는 ‘다음’이라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대중 참여 방식이지만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포털 사이트 쪽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 이는 기사의 다양성과 기자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할 문제다. 또한, 기사에서 사실관계 문제가 있을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는 방식과 분쟁 해결 절차가 아직 명확하게 마련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뉴스펀딩 기업의 투명성 문제도 있는데, 대중으로부터 모인 후원금이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
한국 뉴스펀딩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를 해외에서 찾을 수 있다. 외국의 뉴스펀딩은 우리나라의 뉴스펀딩과 달리 플랫폼을 마련하는 주체가 거대 기업이 아닌 일반 기자들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의 ‘드 코레스폰덴트’가 대표적이다. 이는 네덜란드 유력 일간지 편집장 출신 기자를 포함해 4명의 기자들이 모여 ‘뉴스에서 새로움(New)으로’라는 기치로 2013년 9월 출범한 온라인 저널리즘 플랫폼이다. 단편적인 사건 보도에서 벗어나 맥락을 보여주는 뉴스를 생산하자는 취지로 출범했다. 이들은 주로 탐사 보도나 분석 보도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위해 독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세계적인 언론 비평지인 ‘니먼저널리즘랩’이 비중 있게 보도할 만큼 대중의 열렬한 후원을 받았다. ‘드 코레스폰덴트’는 1년에 6만 5천 원 이상을 후원한 독자에게 구독권을 주는데, 지난해 9월 창립해 최근까지 20억 원에 가까운 후원금이 모였다.
대표적 자유국가 미국에도 뉴스펀딩의 좋은 사례가 있다. 미국에서는 앤드류 설리번이라는 기자가 뉴스위크의 모회사인 데일리 비스트에서 활동하다 독립하면서 뉴스펀딩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후원해 줄 독자들을 모집했고 뉴스펀딩의 형태를 갖춘 블로그를 인터넷에 설립했다.
그가 만든 ‘더 디쉬’라는 블로그는 광고를 일절 싣지 않는 등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오직 독자를 위한 미디어란 점을 강조한다. ‘더 디쉬’는 19.99달러를 내는 유료 후원 독자를 모집했는데, 2014년 11월 기준으로 2만 9000여 독자로부터 약 60만 달러를 모금했다. 또한, 후원금이 뉴스를 생산하는 데에 어떻게 사용 되는지 투명하게 알려주어 대중의 신뢰를 받고 있다.
앞서 소개한 해외의 뉴스펀딩은 상부구조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에서 다음 ‘뉴스펀딩’이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해 준다. 뉴스를 보도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 모두 일반 대중으로부터 온다면, 대중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데에 더 많은 힘을 실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별 기자가 주체적으로 플랫폼을 만들어 낸 뉴스펀딩의 형태가 등장해야 뉴스펀딩이 오롯이 대중을 위한 독자적인 언론으로서 성장 할 수 있다. 이러한 언론이이말로 (대중의) 선동가인 동시에 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낼 것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