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파산·회생, 조세포탈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성철(75) 신원그룹 회장이 회삿돈을 횡령한 아들 정빈(42)씨와 함께 실형을 선고받았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아왔던 정빈씨는 법정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심규홍)는 27일 특경가법상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박 회장에게 "법원의 파산·회생제도를 악용해 수백억의 재산상 이득을 취하고 이 제도 자체의 신뢰를 크게 훼손해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며 징역 6년에 벌금 50억원을 선고했다.
또 함께 기소된 신원그룹 부회장인 정빈씨에게는 "횡령 범행의 죄질이 무거워 실형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박 회장은 회사 개선 작업 이전부터 회생절차 개시신청 전까지 회사를 운영하면서 얻은 이득으로 제3자 명의를 빌려 예금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했으면서도 그런 사실을 숨긴 채 파산·회생철자 개시신청을 했다"면서 "차명재산 등 드러난 금액만 400억 내지 500억이며 채무 면제를 통해 얻은 재산상 이익은 260억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또 "은닉한 재산을 이용해 차명재산을 보유하거나 이를 경영권 회복이나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면서 "더구나 회사자금 담당 임직원들을 동원해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차명재산을 관리해 수십억원의 세금을 포탈했으며 박 회장은 직접 법원에 출석해 허위 내용과 문서를 진술 또는 제출하는 등 적극적으로 법원을 기망하는 데 관여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범행은 선의의 채무자를 가상해 파산·회생제도를 악용한 것이자 이 제도 자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에 큰 충격을 가한 것"이라면서 "이러한 피해는 박 회장에 대한 채권자들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파산·회생제도의 도움이 필요한 경제주체들에게도 적잖은 피해를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다만 "박 회장이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범행의 상당한 부분도 자백하고 있으며 파산절차가 면책결정에는 이르지 않았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차남 정빈씨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회사자금 75억원을 횡령해 그 불법의 정도가 매우 강하다"면서 "이는 정빈씨가 신원그룹 후계자 지위에 있어 가능한 일이며 그에 따라 회사자금담당 임원들도 범행에 가담하게 됐다"며 실형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박 회장은 수백억원의 재산을 차명으로 은닉한 후 파산과 회생 절차를 거쳐 재산이 없는 것처럼 법원과 채권자를 속여 260억원 상당의 채무를 면책받고, 이 차명 재산과 관련해 세금 약 25억원을 포탈한 혐의 등으로 지난 7월 구속기소됐다. 정빈씨도 회사자금 78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같은 날 불구속기소됐다.
수십억원을 탈루하고 수백억원대의 채무를 부당하게 면제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성철 신원그룹 회장이 지난 7월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차량에 탑승해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검찰에 따르면, 박 회장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로 경영이 악화되자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주택을 제외한 전 재산을 회사에 내놓는 조건으로 채권단으로부터 5400억원 상당의 채무를 감면받고, 4700억원 상당의 출자전환, 540억원 상당의 신규 운영자금 등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박 회장은 실제로는 토지와 섬 등 거액의 재산을 차명으로 은닉해둔 상태였다.
이후 박 회장은 2003년 워크아웃 절차가 종료되자 은닉한 재산 등을 이용해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고, 이 회사를 1대 주주이자 지주회사 격으로 활용해 신원 주식을 사들여 신원그룹을 사실상 지배했다.
박 회장은 워크아웃 과정 등에서 부담하게 된 거액의 개인 채무가 발생하자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파산·회생 재판 과정에서 300억~400억원의 차명 주식과 부동산 등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급여 외에 재산이 전혀 없는 것처럼 재판부와 채권단을 속여 예금보험공사 등에 대한 260억원 상당의 채무를 면책받았다.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은 자신의 급여에 대한 채권자의 압류를 피하기 위해 신원 임직원의 장인 명의로 허위채권을 만들고, 신원을 상대로 급여 채권에 대한 압류와 전부 명령을 받은 후 은밀히 급여를 수령해 온 것도 확인됐다.
또한 박 회장은 파산 회생 재판 과정에서 신원의 차명주주들 명의로 면책 요청서를 위조해 법원에 제출한 사실도 확인되면서 사문서위조와 사문서위조행사죄도 추가됐다.
재판부는 이들 부자에 대한 공소사실 모두를 유죄로 판단했다.
신지하 기자 sinnim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