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헌재, 19대 국회 임기 내 국회선진화법 위헌 판단하라.

입력 : 2015-12-11 오전 6:00:00
최진녕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19대 국회 임기가 막바지다. 19대 국회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정답은 ‘식물국회’일 것이다. 그것도 ‘대흉작 식물국회’. 19대 국회의 초라한 성적표가 이를 입증한다. 이번 국회는 헌정사상 가장 많은 법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은 법안 수 비율(가결률)은 역대 최저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가 끝나는 9일 오전까지 발의된 법안 수는 1만7222건이다. 하지만 실제 본회의에서 가결된 법안은 5449건으로 가결률이 31.6%에 그쳤다. 18대 국회에서는 총 1만3913건의 법안이 발의 중 6178건이 입법화돼 가결률이 44.4%였고, 17대 국회 때는 발의 법안 총 7489건 가운데 3775건이 통과되어 그 비율이 50.4%였다. 앞서 14대부터 16대 국회의 가결률은 60∼80%대에 달한다. 30%대 가결률은 역대 최악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전문가들은 야당의 동의 없이는 쟁점법안을 처리할 수 없게 만든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주된 원인으로 꼽는다. 국회선진화법이란 국회의장 직권 상정과 다수당의 날치기를 통한 법안 처리를 금지하도록 한 국회법 규정을 뜻한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과 국회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2012년 5월 2일, 18대 국회 본회의 마지막 날에 여야 합의로 도입됐다. 국회에서 몸싸움과 폭력이 난무하자 이를 영구히 쫓아내자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탄생했기에 ‘몸싸움 방지법’이라고도 한다. 이 법의 시행으로 국회의장 석, 상임위원장 석의 물리적 점거나 다수당에 의한 일방적 의안 처리와 같은 과거의 구태는 거의 사라졌다. 동물국회는 막은 공이 있다. 하지만 식물적 무기력함이 4년 내내 국민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쟁점법안을 처리하려면 야당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보니 여야 협상 과정에서 서로 연관성이 없는 법안을 우격다짐 식으로 연계해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먼저 국회선진화법은 헌법의 대의제 원칙에 반한다.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정하고, 다수결을 국가의 최종적 의사결정 원리로 채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헌법이 정한 다수결의 원리를 넘어서는 가중된 다수결을 일반화시킴으로써 다수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집권당이라 할지라도 소수당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는 대의제 원리에 반하여 위헌이다.
 
또한 헌법이 규정한 정당민주주의 원리에도 반한다. 헌법은 정당에 관한 규정을 두면서 각 정당이 정강정책을 걸고 각종 선거를 통해 집권하고, 그 정강정책의 실천과 결과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당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있다. 현행 국회선진화법 하에서는 힘들여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얻는다 해도 당초 공약한 대로 일관성 있게 정강정책과 공약을 입법화할 수 없다. 더욱이 야당과 무원칙한 ‘입법 주고받기’를 하는 과정에서 집권당의 정책은 길을 잃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국민이 뽑은 다수당이 아닌 선거에서 패한 소수당이 오히려 국회 권력을 쥐게 되는 초헌법적 현상이 발생한다.
 
위헌 논란이 생기면서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작년 9월 제기됐고, 올해 1월에는 권한쟁의심판청구도 있었다. 헌법재판소법은 사건 접수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선고할 것을 정하고 있으나, 이미 기한을 넘긴지 오래다. 헌재가 아직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는 것은 헌법기관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소송 요건상 국회선진화법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을 헌재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반면 국회의원들과 국회의장 및 기획재정위원장 사이의 권한쟁의심판은 실체적 판단과 더불어 국회선진화법의 위헌성까지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문제는 19대 국회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소송을 제기한 19대 국회의원으로 이루어진 청구인의 자격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원칙적으로 헌법재판소는 권한쟁의심판을 각하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바로 헌재가 19대 국회 임기 내에 권한쟁의심판사건을 선고해야만 하는 이유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제19대 국회는 임기 종료 전에 스스로 잘못된 법안을 개정하여 위헌요소를 제거할 의무가 있다. 정치 현실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헌재가 나서야 한다. 국회가 입법권을 남용하고, 다수결 원리에 기초한 대의제에 반하는 제도를 채택한 것이 확인될 경우 헌재는 잘못된 입법형성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내림으로써 왜곡된 헌정체제를 바로잡을 의무가 있다. 시간이 촉박하다. 헌재의 결단을 촉구한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