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이제 한국도 '한국형 경기장' 고민해야"

정성훈 로세티 이사 "한국은 미국·일본과 '팬이 오는 이유' 달라"
"경기장 건설은 건축적인 부분이 많지 않아 매력적"

입력 : 2015-12-14 오전 9:38:32
[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국내에서는 근래 축구와 야구, 그리고 동계 종목을 중심으로 스포츠 경기장이 연이어 건설됐다. 남자축구 월드컵과 하계 아시안게임, 동계 올림픽 등의 국내 개최가 잇따라 확정되면서 많은 시설물이 신축되거나 보수됐고,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동시에 나왔다.
  
각종 논란이 커지면서 '미국 등지의 선진국 소재 경기장을 본따 짓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건설 공법과 스포츠산업 모두 대한민국과 비교해 낫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스포츠 건축물 설계사 로세티(Rossetti)의 한국인 임원인 정성훈(45) 이사는 "한국 경기장은 무엇인가 고민해야 하고, 한국의 경기장은 당연히 '한국에 적합한 경기장'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미국은 물론 일본과도 경기장에 팬이 들르는 이유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경기장은 세상의 트렌드에 민감한 건물'이며 그래서 꾸준히 배우고 세상과 함께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정 이사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성훈 로세티 이사. 사진/이준혁 기자
 
몇 달 전에도 한국에 왔었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한국에서의 업무가 많은 것 같다.
 
한국에 한 해에 평균 6회 정도 오는 것 같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요청이 들어오는 업무가 많고, 직접 한국의 일을 따내서 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알려진 고척스카이돔 컨설팅 건을 비롯해 여러 지자체와 업무 중이다.
 
최근 고척스카이돔(고척돔)에 갔다. 로세티와 정 이사가 직접 컨설팅을 한 구장이다.
 
컨설팅은 서울시의 요청으로 했고 고척돔은 현재 서울시설공단이 맡아 운영하고 있다. 특별한 사안이 있어 들른 것은 아니고, 공단 문화체육본부장과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한국에 온다고 얘기하니 오라고 해서 갔다. 1시간30분 정도 살펴봤고, 관객이 접근 가능한 곳과 미디어 시설을 접했다. '돔경기장운영처' 상위 부처의 책임자인 이지윤 본부장과 여러 얘기를 나눴다.
 
고척돔의 경우 어느 단계부터 컨설팅을 했나.
 
공사가 60~65% 이뤄진 상황에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굉장히 많은 방안을 제안했다. 그 중 시가 택한 것도 있고, 비용 등의 여러 이유로 선택 못한 것도 당연히 있다. 고척돔 설계사는 제주월드컵경기장의 설계사로, 비전문가라고 매도할 만한 곳은 아니다. 다만 시가 주변 조언으로 로세티에 컨설팅을 줬고 요청에 따라 여러 형태의 컨설팅을 했다.
 
60~65%면 공사가 많이 진행된 이후에 컨설팅 작업을 맡은 경우다. 당시 고척돔을 바라보며 받은 느낌은. 
 
고척돔은 목동과 거의 다르지 않은 형태다. 아마추어용 경기장이다. 그런데 그것이 설계사 잘못은 아니다. 처음에 아마추어 구장으로 짓기로 했고 그 지침에 맞춰서 설계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설계변경 과정에 있다. 시공 전이나 공사 초기에 바꿨다면 변경의 폭이 넓지만 프로용 경기장으로 정책이 바뀌어 지붕도 씌웠을 정도로 공사가 진척된 시점이었다. 아마추어용 경기장과 프로용 경기장은 성격부터 다르다. 프로가 쓰는 경기장은 팀의 상주와 팬을 생각해야 한다. 컨설팅이 어려웠다.
 
그렇다면 로세티는 어떻게 고척돔을 컨설팅해 시에 결과물을 줬나.
 
위에 말한 내용이 주가 된다. 아마추어용 경기장에는 없던 팬을 위한 부분과 선수 상주 부분 추가와 이로 인한 각종 변경에 대해 많은 개선 방안을 엮었다. 로세티는 상당히 적은 돈을 받고도 가능한 한 여러 방법을 주려했다. 시가 투자 비용과 시기 그리고 여론 등을 모두 고려해서 대응 가능하게 짰다. 예를 들면 시기별 대응 방안의 경우 '꼭 해야 한다', '1년 뒤에 해도 좋다', '2년 뒤에 (특정한 A상황 발생시) 하면 된다', '눈치 보며 안 해도 된다' 등으로 나눴다는 의미다. 시는 로세티의 이런 뷔페식 메뉴판에서 취사선택해 받아들인 경우다.
 
'구원투수'처럼 컨설팅을 맡게 됐다고 하니 독자 입장에서는 정 이사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 할 것 같다. 그동안 정 이사와 로세티가 작업한 스포츠 건축물은 무엇이 있는가.
 
메이저리그(MLB) 야구장인 코메리카파크의 리모델링, 포드필드 NFL 스타디움 및 바쿠올림픽스타디움 등의 스포츠디자인컨설팅, 스톡홀름 글로브 아레나와 데이토나500 나스카 레이싱 경기장, 그리고 US 내셔널 테니스 센터 등 각 종류 스포츠 경기장 기획과 설계 등을 해왔다. 한국에서는 최근 수원케이티위즈파크를 짓는 수원시에게 전략을 짜서 건냈다. 그간 프로·올림픽·대학 등의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더불어 경기장을 짓고 보수하는 과정을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한다. 그래서 스포츠 종목 자체와 팬 심리에 대한 리서치 업무도 많이 한다.
 
경기장을 건설하려면 준비 과정이 복잡할텐데.
 
나의 역할은 단순한 디자인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프로젝트 구상에 기여를 하는 것이다. 전체를 보고 발주처와 밑그림을 함께 그린다. 한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건축적 마스터플랜과 다르다. 건축가이나 사업적인 점도 함께 보고 이해하며 전략설정을 한다. 그래서 내 작업을 '전략적 비전 플랜(strategic vision plan)'이란 용어를 써서 설명하곤 한다.
 
그렇다면 고척돔은 향후 어떤 형태로 개선돼야 한다고 보는가.
 
한국의 경기장은 1000억~1500억원을 들여서 건설한다. 이 돈은 '아주 좋은 경기장'을 짓는 데 충분한 돈이 아니다. 처음부터 미국처럼 3000억원 이상 투자해 경기장을 지을 여건이 아니라면 앞으로 좋은 경기장으로 발전 가능한 플랫폼의 형태로 만들기 바란다. 고척돔을 완성품으로 바라보면 여러 문제가 있다. 하지만 고척돔을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플랫폼을 인식하고 더욱 현명한 투자로써 더욱 좋은 구장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단순하게 좌석 교체나 난간 설치 등은 아니다.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자.
 
서울시가 현재 추진하는 동남권공공개발은 어떻게 진행되야 한다고 보는가.
 
동남권공공개발의 큰 틀에 대해서는 제가 말할 위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큰 그림의 내부에 있는 잠실종합운동장 단지 개발에 대해 한 가지 말을 하고 싶다.
 
비록 경제논리에 의해 MICE 관련 시설이 많은 영향을 미칠수 밖에 없지만 스포츠 인프라가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은 잊지 말아야 한다. 그저 새로운 경기장이 만들어지고 리모델링이 되는 데에 만족을 하지 말고, 경기장이 단지 내 각 개발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게, 현명하게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원케이티위즈파크의 전략을 짰다고 했다. 어떤 전략을 짰나.
 
10구단 유치 준비 과정에 수원시에 경기장 관련 전략 수립을 했다. 수원종합운동장 권역에 야구와 엔터테인먼트는 물론 문화까지 결합한 밑그림을 그려 (수원시에) 넘겼고, 결국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 대한 리모델링 과정의 밑바탕이 됐다. 다만 입찰 과정의 여러 이유로 한국 소재 다른 설계사무소가 실제 설계했고 제 여러 가지 전략이 완전히 녹지 않아 아쉬운 면이 있다.
 
건축물 설계 작업 중인 정성훈 로세티 이사. 사진/정성훈 이사 제공
 
스포츠 건축물 설계를 전문적으로 담당한 계기가 있는가.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연세대 건축과) 유학을 떠났다가 미국 설계사무소 가서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경기장 전문은 아니었다. 입사한 설계회사가 경기장 프로젝트를 맡았고, 내가 참여하게 됐다. 그때 경기장 설계에 재미를 느꼈다. 더불어 그 무엇보다 내 스스로 열렬한 스포츠 팬이다(웃음). 학교에서는 한 번도 스포츠 건축을 해본 적 없다. '우연'이라는 것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는다. 인생은 우연이 많은 것 같다.
 
 
요즘 해외 취업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해외취업 노하우를 밝힌다면.
 
취업 프로세스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답변이 뻔한 얘기다. 취업 과정에 대해서 내 경험을 토대로 속된 표현을 하자면 "쫄면 진다". 한국인은 착한 사람이 많아 주눅드는 경우를 많이 접했다. 잘 하는 분도 꽤 많지만 자신감이 더 필요하다. 너무 숙일 필요 없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미국은 생각보다 차별이 없는 것 같다. 자신있게 잘 하면 될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어디서 안 쫄리는 자신감 말이다.
 
 
한국의 스포츠 건축물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한국의 경우 스포츠 건축물과 일반 건축물의 차이가 없다. 그게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다른 건축물 설계도 했던 입장에서, 미국은 한국과는 다르다. 처음 스포츠 건축물 설계를 맡았을 당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건축이 아니구나"란 느낌도 받았다. 쉽게 표현하자면 건축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고 그래서 스포츠 건축물 설계나 컨설팅 작업이 더욱 매력이 있다. 예술·심리·마케팅·경제·산업 등 여러 부분이 설계에 적극 반영된다. 그래서 여러모로 배우면서 일하고 있다.
 
 
한국은 스포츠 건축물이 만들어진 이유가 외국과 다른 것 같다. 이유가 다르기에 정의도 함께 다르게 된다. 한국 경기장은 경기만을 위해 생긴 곳 같다. 선수가 먼저냐, 팬이 먼저냐는 딱히 정답이 없지만 한국은 너무 선수에 치중한다. 경기가 승리 위주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팬들이 관람하기에는 꽤 불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선했으면 좋겠나.
 
 
일단 철학적 질문을 해야 한다. '왜 만들지?'란 질문의 답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성과 시민 그리고 자금을 함께 생각해야 하나 공공성에 배려를 해줬으면 한다. 나라마다 다르고 지자체마다 다르나 경기장이 성공해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것이 공공성이라 본다. 한국은 '왜 만들지?'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다. 그냥 '낡아서' 혹은 '공약이니까'다. 그래서 짓고 난 후 지은 이유를 몰라 비난을 듣기도 한다.
 
  
'K리그 CEO 아카데미'에서 강연 중인 정성훈 로세티 이사. 사진/정성훈 이사 제공
  
한국에 입국해 최근 잇따라 강연을 했다. 대중과의 접점이 많은 건축가다.
 
나는 전문가 영역에 있다. 하지만 경기장은 전문가의 장소가 아닌 '팬을 위해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공감할 정치가와 행정가, 무엇보다 대중이 필요하다. 많은 분이 내 말에 대해 공감하고 때로는 다른 의견을 함께 공유할 경우에야 비로소 좋은 경기장이 우리 사회에 생겨날 수 있다고 믿는다.
 
미국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고 최근 한국에서도 슬슬 명성이 생기고 있다. 혹시 귀국 계획이 있나.
 
1996년에 미국 유학을 떠나 미국에서 생활한 지 거의 20년이 다 됐다. 유학기간에는 공부로 정신이 없었고 졸업 후 직장을 다닌 몇 년 또한 정신없이 지낸 시간이었다. 조금 살 만하니 한국 생각도 나곤 하지만, 이제 미국에 사는 게 더 편할 시점도 있다.
 
이제는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 일을 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미국에 있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있으면 내 시각도 좁아지고 획득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경기장은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는데 나도 꾸준히 배우고 함께 진화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한국은 사회와 문화가 '트렌디하다'는 표현을 쓸만 하지만, 아직 경기장 트렌드를 이끄는 곳은 미국이다. 한국에 향후 자주 가겠지만 아직 영구 귀국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정성훈 로세티 이사. 사진/이준혁 기자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한국 스포츠 인프라는 일본과 많이 닮았다. 그러다 최근 미국을 닮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접한다. 미국이 세계 경기장 흐름을 주도하고 있고 나 역시 미국에서 활동을 하면서 많은 일들을 한다. 하지만 닮으려는 노력의 바탕에는 이유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한국 경기장들이 '벤치마킹' 이름 하에 결과물만 가져오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경기장은 문화와 트렌드를 반영하고, 그리고 문화와 트렌드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미국 경기장에서 배울 것은 배우되 한국 스포츠와 팬 문화, 사회, 경제를 반영하는 한국만의 경기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한국 스포츠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준혁 기자 leej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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