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을 대신해 척척 수술을 진행하는 로봇은 더 이상 공상과학영화 속의 얘기가 아니다. 첨단과학 기술과 접목해 흉부외과, 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 다양한 영역에서 로봇수술이 이용되고 있다. 전세계 수술로봇 시장은 2012년 31억달러(한화 약 3조7800억원)에서 2019년 199억5000만달러(약 23조5700억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수술로봇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개발 과정이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 기업의 참여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자동차 산업에 이미 로봇이 사용된 것에 비해 수술로봇은 역사가 짧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수술에 로봇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발매된 수술로봇을 보유한 업체가 큐렉소다. 큐렉소는 수술로봇 중에서도 인공관절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재준 큐렉소 대표는 "내년은 글로벌 진출의 원년으로 세계 인공관절 수술로봇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미래 먹거리로 수술로봇 시장 진출을 택한 한국야쿠르트가 2011년 큐렉소를 전격 인수한 지 4년이 흘렀다. 이재준 대표이사에게는 고통과 와신상담의 시간이었다. 큐렉소 대표이사 명함에 이름을 새긴 지 올해로 3년. 큐렉소는 이제 전세계 최초의 수술로봇 '로보닥'을 보유한 회사로 성장했다.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회사는 정체 상태에서 뽑아든 카드가 그였고 그는 이에 부응했다는 평가다.
성균관대학교 유전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야쿠르트에서 영업, 기획, 구매자재, 비서 부문 등 다양한 현장경영 감각을 익혀왔다. 2012년부터 회사 수장에 오른 이후 이 대표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일을 했다. 유산균 음료를 팔던 이 대표는 3년만에 수술로봇 전문가로 거듭났다.
큐렉소의 관절 수술 로봇 '로보닥'은 미국 ISS사가 1992년 개발에 성공했지만 시대를 앞서 나간 탓에 빛이 바랬다. 혁신성을 입증할 만한 연구 자본력이 부족해 시장에서 외면 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차곡차곡 미진한 부분들을 채워 나가자 1993년 이후 5년간 무려 850명이 넘는 환자를 수술하며 전세계에서 호평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난관은 남아 있었다. 두 차례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시장에 전례가 없던 최첨단 신개발 의료기기였으며, 적절한 비교할 만한 동종 제품이 없어 안전성, 유효성 관문을 통과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당시에 의료용 로봇이라는 생소한 분야의 의료기를 심사할 전문가조차 FDA에서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었죠."
ISS는 FDA 허가에 재도전했으나 추가 개발비와 임상시험 비용 등의 문제로 결국 자금난에 봉착하게 됐다. 2006년 한국 의료기기 전문업체 큐렉소가 ISS를 인수 전격 인수했다. 그러나 큐렉소 역시 다각도로 추진한 로보닥 사업에 실패를 겪었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한계였다. 한국야쿠르트는 큐렉소가 지닌 가치를 인정해 900억원의 투자를 감행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때부터 로보닥의 사업도 본격화됐다.
"한국야쿠르트는 유산균 음료의 대표기업으로 종합생활 건강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큐렉소를 인수하게 됐습니다. 로보닥에 담긴 대담한 상상력과 도전정신이 최초의 상업용 수술로봇으로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로보닥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매력이죠. 한국야쿠르트와 큐렉소는 로보닥의 도전을 완성하려는 것입니다."
로보닥은 수술로봇 시장에서 여전히 잠재력이 높다. 연골 손상이 심하면 인공치환물로 대체하는 수술을 시행하게 된다. 로보닥은 치환물을 넣을 뼈 부분을 정교하게 깎는 장치다. 최소절개와 최소출혈, 손 떨림이 없는 정교한 수술, 수술시간 단축에 따른 의사 피로도 감소 등에 효과적이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관절수술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 고관절 수술 시장은 연평균 4.6% 성장해 2019년 87억달러(약 10조279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무릎관절 수술 시장은 3.5% 성장해 2019년에는 약 92억달러(약 10조87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공관절 수술로봇은 큐렉소의 로보닥, 미국 마코서지컬 '마코플래스티'가 있다. 마코플래스티는 인공관절 수술 적용부위가 한정적이다. 전세계적으로 로보닥의 경쟁자가 없는 셈이다.
"인수 후 1년 동안은 로보닥 사업에 대한 엉켜 있던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로보닥이 로봇 의료기기라는 새로운 분야로 세계시장에 소개된 지 15년이 넘었고, 한국시장에 도입된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로보닥 사용자는 아직 많지 않았죠. 독일과 일본에 도입된 로보닥은 오래 전에 사용이 중지됐고 지금은 미국 일부와 싱가폴, 한국에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미국시장에서 로보닥의 인허가가 지연되고 투자가 끊기면서 사용자에 대한 지원이 중지되고 연구개발의 도전도 멈췄습니다."
이 대표는 큐렉소의 경영을 맡은 후 로보닥의 재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연구 인력을 재정비하고 R&D를 강화했다. 사용자의 요구에 맞춰 절삭도구와 절삭경로를 개선하고, 고정장치를 단순화했다. 유지보수 인력 보강을 통한 로보닥 운영 능력을 향상시켰다. 한국 내의 로보닥 수술이 큰 폭으로 신장돼 현재 연간 1000건 이상의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로보닥의 업그레이드 제품인 '티솔루션원'의 개발에도 착수했다. 뼈를 정밀하게 깎아주는 기능을 중심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탈바꿈시켰다. 의료진이 사용하기 편리해졌다. 개발에만 3년이 걸렸다. 미국 자회사(TSI)에 대규모 연구 개발비를 투자했으며, 인공 관절 로봇 수술 임상 실험을 1만5000건 이상 실시했다.
티솔루션원이 큐렉소가 사활을 걸고 있는 글로벌 프로젝트다. 티솔루션원은 현재 고(엉덩이)관절 부분에 대해 미국 FDA승인과 유럽연합 통합안전인증(CE)승인을 받았다. 고관절로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판매가 되고 있다. 무릎관절염으로 승인을 받기 위해 개발이 한창이다. 내년 개발을 최종 완료하고 내년 하반기에 FDA와 CE 승인을 획득한다는 계획이다.
"로보닥이 2006년 한국 회사로 이전됐지만 10여년만인 2015년에야 드디어 정상적인 비지니스 활동이 시작된 것이죠. 미국 영업인력을 확충하고 마케팅과 홍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무릎관절 승인이 이뤄지면 매출이 확대될 것입니다."
이 대표는 큐렉소 대표로서 3년은 성공을 위한 기반을 닦는 기간이었다고 강조한다. 앞으로는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수술로봇을 상업화하기 위한 도전은 돈과 기술의 문제뿐 아니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측면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큐렉소는 세계적인 정형외과 수술로봇 의료기 업체로 성공하기 위한 준비돼 있습니다. 새로운 인공관절 수술로봇 티솔루션원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드는 중요한 사업단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재준 대표는 새로운 수술로봇 '티솔루션원'으로 미국과 유럽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년이 회사를 정상화하고 R&D에 매진하는 기간이었다면 내년부터는 비지니스가 정상화돼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겠다고 강조했다.(사진제공=큐렉소)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