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최첨단 인증기술과 빅데이터를 접목한 신개념 은행을 선보인 것이다. 일찌감치 떠날 채비를 마친 우리은행은 국내 은행권 최초로 모바일 전문은행 '위비뱅크'를 출시하고 중위험·중금리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중금리는 제2금융권의 몫"이란 편견을 깬 시도였다. 신한은행도 질세라 중금리 시장을 노린 '써니뱅크'를 선보이고, 여기에 은행에 가지 않고도 신규 계좌를 개설하는 '비대면 실명확인' 기술을 은행권 최초로 적용했다. 이제 두 은행은 '최초'란 수식어에 만족하고 않고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한 경쟁에 본격 돌입했다.
◇위비뱅크, 첫 모바일 전문은행…중금리 대출 강자
우리은행은 지난 5월26일 은행권 최초로 모바일 전문은행인 '위비뱅크(WiBee Bank)'를 출범했다. 고객 편의와 은행 수익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계산에서다.
우리은행이 눈여겨 본 지점은 중금리 시장이다. 중급 신용등급자들이 고금리 대출 상품에 내몰리는 현실에 감안해, 중금리 상품을 출시한 것이다.
이전까지 4~6등급 사이의 중금리 대출자들은 제1금융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20~30%대 고금리를 취급하는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중금리 시장이 제대로 형성돼있지 않은 탓이다. 중금리 대출은 시중 은행이 다루기엔 위험했고, 저축은행이 담당하기엔 수익성이 낮았기에 찬밥 취급을 당했다.
우리은행은 이 같은 현실에 착안, 핀테크 기술을 접목해 연 5.8~9.6%의 금리를 제공하는 '위비모바일 대출'을 선보였다. 스마트폰의 편리성과 비대면 기술이 지닌 낮은 비용이란 이점을 살려 중금리 대출에 따르는 리스크와 비용을 현저하게 떨어뜨렸기에 가능했다. 여기에 금융권 최초로 핀테크 기술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대출심사를 도입해 무방문, 무서류, 무담보 등 3무 서비스를 가미해 편리성을 높혔다.
위비모바일 대출 사용법은 간단하다. 위비뱅크 앱을 깔고 로그인 한 뒤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신분증 사진을 통해 본인 확인을 거치면 24시간 안에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5분 이내에 대출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SGI서울보증보험에서 보험증권을 발급할 경우, 대출이 이뤄진다. 대출 한도는 최대 1000만원이다. 우리은행 거래 고객이 아니어도 타행공인인증서만 있으면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위비모바일 대출은 출시 이후 중금리 대출에 목말랐던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우리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5억원이던 위비 누적 대출규모는 지난 11월 들어 440억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건수는 100건에서 1만2000건으로 늘었다.
'SOHO 모바일 신용대출'과 같은 맞춤형 대출도 있다. BC카드 가맹점으로 사업기간 1년 이상, 외부신용등급 (CB) 6등급 이상이면 최대 3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대출여부는 개인사업자의 카드가맹점 빅데이터를 활용한 사업성평가와 영업실적을 바탕으로 결정된다.
지난 11월엔 '위비 직장인 공무원 모바일 대출' 상품도 출시됐다. 재직, 소득확인 서류를 가지고 영업점을 방문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심사에 필요한 재직과 소득자료를 자동으로 반영하는 핀테크 기술을 적용한 덕분이다.
위비뱅크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대출에 그치지 않는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간편송금 서비스인 '위비 모바일 페이'는 최초 한 번만 핀번호를 등록하면, 추가로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가 없이 핀번호만으로 하루에 최대 50만원 범위 내에서 계좌이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지하철 코인라커룸에 착안해 만든 보관함 방식 송금도 있다. 이는 송금인이 돈을 위비뱅크 보관함에 쟁여놓으면 휴대폰과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을 통해 친구에게 메시지가 전달되고, 송금 내역을 전달 받은 수취인이 보관함에서 찾아가는 방식이다.
우리은행은 국내에서 이룬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시선을 해외로 돌렸다. 지난9월 우리은행은 캄보디아에 7번째 지점을 개설하고 위비뱅크 서비스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위비뱅크 캄보디아'는 위비뱅크의 해외 첫 진출 모델이다. 캄보디아가 스마트폰과 SNS 사용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위비뱅크 캄보디아는 모바일로 대출상담을 신청하고 그 결과를 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위비뱅크를 통해 모바일대출을 이용하고 있다. 사진/우리은행
◇우리은행 중금리 대출, 연체 부메랑 돼 돌아오나
우리은행은 일찌감치 모바일 서비스를 출시한 후로 중금리 시장 내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대출 초기에 부실로 드러나지 않은 여신이 나중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신용도가 비교적 낮은 고객들을 상대하다 보면 대출 상환률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중금리 대출은 기존 은행권 고객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6~7등급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개인신용등급별 불량률은 1~5등급이 0.06~0.73%에 불과하지만, 6등급과 7등급의 경우 각각 2.10%, 6.63%수준으로 대폭 올라간다. 그만큼 대출이 부실화될 우려가 크다. 연체율도 일반 은행 대출보다 높아 이러한 우려감이 더욱 높아진 상태다.
지난 6개월 간 위비뱅크가 400억원이 넘는 대출 실적을 올리는 동안 연체율은 2.0% 초반에 육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기존 은행의 개인대출 연체율인 0.42%보다 약 다섯 배에 달하는 수치다. 금융당국이 위비뱅크의 초기 운영한도를 2500억원으로 설정하고 확대 여부를 추후 재승인 하기로 한 것도 중금리 대출의 위험성을 감안한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권 가계 대출 연체율이 0.4%대에 이르는 걸 감안하면 2.0%는 매우 높은 수치"라며 "대출 상품의 종류에 따라 그러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은행은 위비뱅크의 연체율 추이를 눈여겨보면서 세간의 우려를 줄여나갈 계획이다. SGI서울보증에 의존하는 대출 구도 또한 문제로 지목된다. SGI서울보증이 보증서 한도를 산정하고 우리은행이 대출을 승인하는 방식이다.
SGI서울보증과 맺은 협약 규모 2500억원이 조기에 마감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앞서 우리은행은 SGI서울보증과 대출을 약정을 맺은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서민을 상대로한 대출 상품인 만큼 한도가 부족해서 영업을 못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출 규모도 그렇게 쉽사리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인 K뱅크와의 협업도 과제로 남아 있다. 중금리 대출 상품을 준비 중인 K뱅크가 우리은행 측에 위비뱅크의 운영 노하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 우리은행은 K뱅크의 회원사 중 하나라 이러한 요구를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처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K뱅크에 주주로 참여하면서 관련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지만 이는 자사의 주력 브랜드인 '위비뱅크'와의 경쟁력과도 연관이 되는 만큼 내부에서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써니뱅크, 비대면 인증 첫 적용…환전·송금에 힘줘
신한은행은 지난 12월2일 국내 최초로 은행에 가지 않고도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써니뱅크(Sunny Bank)'를 본격 출시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비대면 거래의 첫 테이프를 끊은 셈이다. 덕분에 꼭 신한은행 고객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서비스를 모바일을 통해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은행에 상관없이 금융 소비자는 영업점에 가는 수고를 덜고 은행은 비용을 절감하는 ‘윈윈’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실제로 써니뱅크의 '써니 모바일 간편대출'은 빅데이터 기반 소득추정 기법을 활용해 무서류로 대출해주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신용카드를 보유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별도의 서류 없이 5분 안에 대출 승인 여부를 알 수 있다. 대출금리는 연 5.34~9.34%이며 최대 500만원까지 대출된다.
사용법은 위비뱅크만큼이나 간단하다. 써니뱅크 앱에 기본정보를 입력하고 전송받은 휴대폰 인증번호를 입력한 뒤 간편로그인용 6자리 비밀번호를 설정하면 된다. 단, 신한은행 계좌가 없는 소비자는 다른 은행에서 발급받은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이용이 가능하다.
아울러 써니뱅크는 모바일 기반 서비스에 끈질기게 따라붙던 보안 문제도 일정 부분 해결했다. 서비스 별 특성을 반영한 3중 확인 방식을 적용한 것이다. 확인 절차는 신분증 촬영 전송, 영상통화 또는 기존 계좌, 휴대폰 인증으로 이어진다.
신한은행은 써니뱅크에 그치지 않고 무인스마트점포인 ‘디지털키오스크’도 함께 선보였다. 디지털 키오스크는 디지털 셀프뱅킹 창구인데, 지점 입출금 창구 거래의 90%에 해당하는 총 107개의 창구 업무를 볼 수 있다. 은행 창구 업무인 입출금계좌 신규, 인터넷뱅킹 신규, 100만원 초과 무통장 송금, 통장 이월기장, 체크카드 신규·재발급, OTP·보안카드 발급 등 다양한 업무가 그 안에 포함된다.
굳이 기계를 사용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주말이나 은행 업무 이후 시간에 보안카드 분실, 이체 한도 부족 등의 문제를 재빨리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한은행은 고객의 요구사항을 감안하고 내년부터 디지털키오스크를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신한은행과의 연계성을 높인 것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신한은행이 제공하고 있는 모바일뱅킹앱인 '신한S뱅크'에서 간편대출·환전 메뉴를 클릭하면 써니뱅크로 자동으로 넘어간다. '신한S뱅크 스피드업'이라는 별도 앱을 통해 구현했던 환전 업무를 써니뱅크로 이전한 것이다.
아울러 신한은행은 환전과 해외송금 등 외환 업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는 우리은행의 위비뱅크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써니뱅크의 환전 관련 서비스는 5가지인데, 출시된 지 6개월 만에 25만건, 1,500억원이 넘는 실적으로 환전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스피드업 누구나 환전’도 여기에 포함됐다.
'써니 환전 모바일 금고'는 수시로 외화를 환전한 뒤 필요할 때 출고해 쓸 수 있도록 했고 '써니 환전 선물하기'는 지인에게 외화를 기프티콘처럼 선물할 수 있게끔 했다. 고객이 지정한 희망 환율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환전이 실행되는 '써니 예약환전'과 지속해서 변하는 환율을 고객이 원하는 때에 맞춰 알려 주는 '써니 환율 알림정보' 서비스도 있다.
간편성은 높이고 수수료는 낮춘 '써니 간편 해외송금'과 해외송금 시 입력항목을 최대한 간소화한 '써니 글로벌 신한계좌 송금'도 눈에 띈다. 덕분에 3분 만에 송금신청이 완료되고 당일 송금 또한 가능해졌다.
◇조용병 신한은행장이 12월2일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비대면 실명확인을 통한 금융서비
스 써니뱅크 시연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한은행, 선대출·후계좌 약점…인력도 턱없이 부족
연내 출시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을까. 신한은행의 써니뱅크는 혁신적이나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써니뱅크를 통해 대출을 받은 고객에 한해 계좌개설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계좌를 개설하고 대출을 받는 것이 아니라, 대출을 받아야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에 신한은행은 서비스 초기 운영의 안정성과 대포통장 방지를 위해 이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계좌개설 대상 고객을 확대하고 비대면 실명확인을 더 많이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담 직원이 10명에 불과하다는 점도 약점으로 지목된다. 영상통화를 이용한 실명 확인 시, 동시간에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면 시간이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일부 해외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수백명의 상담 직원을 둔 것과 비교하면 10명은 너무 초라한 숫자다.
신한은행은 실명 확인 시간 자체가 짧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앞으로 수요에 맞게 인력을 확충할 방침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현재 상담사를 10명 운영 중이지만, 향후 수요에 따라서 점차 늘려나갈 것"이라며 "영상통화를 필요로 하는 거래가 많지 않고 실명 확인은 짧은 시간 진행되므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4시간 내 대출을 표방하고 있지만, 프로세스상 하루가 지나도 대출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령, 직장인 대출을 포함한 일부 대출 서비스는 건강보험 자격득실 확인서와 연금산정용 가입내역 확인서 등 제반 서류를 신한은행에 팩스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이용이 불가능하다. 24시간 내 대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셈이다.
무인점포인 디지털키오스크가 인력 감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영업점 직원이 하는 업무 대부분을 디지털키오스크가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유휴 인력을 재교육해 자산관리 같은 전문직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나, 워낙 점포 수가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라 장기적으로 구조조정 문제를 배제할 수 없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인력 감축의 우려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일손이 달리는 상황이라 당장 인력 감축 문제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3000명의 직원이 돈을 찾고 신고받는 단순업무를 하고 있는데, 이들의 처우를 개선해주면서 재교육을 시켜 전문상담 쪽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기계로 채워진 은행에 적응하지 못하고 은행 서비스와 멀어질까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아울러 중금리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써니뱅크는 먼저 모바일 중금리 상품을 출시한 우리은행과 내년에 출범하는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와 카카오뱅크 2곳과 경쟁해야 한다.
윤석진 기자 dda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