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성기자]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신세라는 평가는 오래된 얘기다. 이미 몇몇 부문에선 중국에 추월당했고 일본과 가격경쟁력 싸움에선 비슷하거나 열세에 있다. '샌드위치' 신세를 넘어 가격과 기술 양면에서 모두 얻어맞는 ‘샌드백 신세’라는 지적도 결코 과한 표현이 아니다.
선진국 뒤를 쫓는 ‘패스트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으로 급속한 산업 발전을 이룬 우리나라는 이제 모든 산업 분야에서 ‘퍼스트 펭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남극의 어린 펭귄들이 처음 바다에 뛰어들 때, 무리에 앞서 가장 먼저 과감히 바다에 뛰어드는 첫 번째 펭귄을 뜻하는 말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최근 '한국 제조업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 보고서에서 3대 해법으로 ▲유연하고 합리적인 산업 생태계 문화의 형성 ▲뉴 노멀의 기술생태계 구축 ▲제조업 레버리지 전략 등을 제시했다.
유연하고 합리적인 산업 생태계 문화를 만드는 것이 제조업 '퍼스트무버'가 되는 최우선 조건이다. 기업 거래, 협업, 소통의 바탕에 깔려 있는 한국 특유의 ‘기업 문화’를 바꾸는 것이 첫 번째 단계라는 얘기다. 특히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 볼 만하다. 미국 기업문화는 개방형 협업(Open Collaboration)에 친화적이다. 미국 대기업들은 협업의 대상이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 규모나 형태에 관계없이 대등한 관계에서 협력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기업은 중소·벤처기업을 대등한 거래관계의 협업을 하기보다는 인수합병(M&A), 인력 빼가기를 통해 내재화시키는 경우가 적지않다. 오히려 작은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혁신 아이디어와 성과를 대기업 내부에 이식하고 적절히 보상하는 '완성형 생태계' 구축이 필요한 이유다. 김상윤 수석연구원은 "한국에는 소프트웨어(S/W) 인재가 부족하다, S/W 산업이 약하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많은데, 벤처기업 혹은 내부 인력의 혁신 성과를 대등한 관계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협업·거래 문화가 지속된 것이 문제"라며 "산업 생태계 내 S/W 분야의 불공정한 대우와 소외에 대한 인식이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일침했다.
뉴 노멀시대에 맞춘 기술생태계 구축을 위한 기술 주도권 확보도 중요하다. 그중 하나가 기술 공유(Technology Sharing)다. 기술 공유란 기업이 보유한 기술을 생태계 내 플랫폼을 공유하고 있는 기업에게 ▲특허 공개 ▲크로스 라이선스 ▲오픈 소스의 형태로 기술 사용을 허가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과거 로열티나 기술료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일부 포기하고, 기업 내 핵심기술을 공유해 해당 생태계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될 수 있다. 최근 미국 전기자동차 기업인 테슬라가 전기차 관련 핵심특허를 모두 공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앨론 머스크 테슬라 대표는 지난해 6월 특허공개 인터뷰에서 "기술적으로 앞서 나가는 것은 특허 보유와 상관없으며 가장 뛰어난 기술자를 끌어오고 그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데 달렸다"며 “다른 전기차 업체가 테슬라의 특허 기술을 마음대로 사용해도 문제삼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제조업은 국가 산업의 중심축으로서 금융, ICT와 과학 기술 등 타 산업과 융합해 새로운 사업 및 서비스를 창조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에대해 보고서는 '제조업 레버리지' 전략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GE는 기관차, 항공기 엔진, 발전 터빈, 가전제품 등 주요 제품과 이와 관련된 모든 유지관리. 또한 서비스, 컨설팅, 금융 서비스까지 통합한 제품통합형 서비스 제공한다. 보잉은 주요 항공기 모델에 IoT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정보, 감시 시스템을 탑재했다.
김 수석연구원은 "더 이상 제조업은 제품을 만들어 파는 ‘생산’과 ‘조립’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기획-디자인-R&D-생산-서비스’의 모든 과저과 연계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부분에서 제조업의 혁신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기자동차 기업인 테슬라의 앨론 머스크 대표는 지난해 6월 특허공개 선언을 하면서 '기술 공유'의 창시자로 불린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기술공유를 '한국 제조업 퍼스트무버' 전략의 하나로 꼽았다. 사진은 앨론 머스크 대표가 지난 9월29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에서 테슬라의 첫 SUV인 모델 X를 선보이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민성 기자 kms0724@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