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배우 정우성 "나는 낭만주의자"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로 첫 제작 맡아

입력 : 2016-01-12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정우성은 20년 넘게 국내 최고의 비주얼스타로 불린다. 큰 키에 건장한 어깨, 흠 잡을 곳 없는 얼굴까지 비주얼로는 그를 넘어설 배우가 많지 않다. 비주얼뿐 아니라 영화계에서 정우성은 성격 좋은 배우로도 통한다. 그를 상대한 스태프들은 하나같이 정우성의 매너와 배려를 칭찬하기 바쁘다.
 
어느 면으로 보나 완벽해 보이는 정우성이지만 그의 어린시절은 풍요롭지 못했다. 가난이 극심했고 17세까지 자신의 방 한 칸 없었으며, 철거민으로 살며 집을 옮겨다니기 바빴다. 중학생의 나이에 여고 앞 햄버거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십만원의 보너스를 받았다는 소문은 이미 유명하다. 정우성은 이후 영화 '구미호'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고, '비트'로 대성공하며 현재까지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그런 정우성이 새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배우 겸 제작자로 나섰다. 영화 '멋있는 놈, 나쁜 놈, 웃기는 놈'('놈놈놈')으로 인연을 맺은 신인 이윤정 감독의 데뷔를 돕기 위해서다. 무엇이 그를 제작자로 이끌었냐고 묻자 정우성은 "철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재능 있는 영화인을 지지하는 낭만과 이상까지 갖춘 정우성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배우 정우성. 사진/CJ엔터테인먼트
 
배우에서 제작자로 나서게 된 배경
 
이윤정 감독과 정우성의 인연은 '놈놈놈'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 감독은 영화의 스크립터였다.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이윤정 감독은 직접 쓴 시나리오를 정우성에게 보여주기도 하며 인연을 이어갔다. 그러다 갑작스레 한참동안 연락이 끊겼다. 이 감독이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이 감독은 단편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를 연출했다. 그리고 다시 정우성을 만났다. 이 감독은 정우성에게 단편 영화를 보강해 장편으로 만들 계획을 설명했다.
 
하지만 정우성은 다르게 생각했다. 장편 영화를 만들려면 단편 영화를 늘릴 게 아니라 새로운 장편 시나리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 감독에게 "근데 왜 단편 시나리오는 안 보여줬어?"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이 질문이 정우성을 제작자로 나서게 한 시발점이었다.
 
"이 감독 시나리오의 남자주인공 이름은 다 'W'예요. 이유를 물어보니까 '정우성이 로망'이기 때문이래요.(웃음)그런 로망이 있으면서 단편 시나리오는 왜 안 보여줬냐고 하니까 '어떻게 보여드려요?'라고 하더라고요. '감히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런 후배들의 주저함이 싫었어요. 로망이라는 건 선망의 대상이고 꿈인데, 꿈을 갖고 있으면서 시도해볼 생각도 못하는 게 싫었어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나를 잊지 말아요'의 장편 시나리오는 정우성의 마음을 훔쳤다. 직접 배우로 나서기로 하면서 제작사를 소개시켜주려고 했다. 하지만 '멜로'라는 장르가 걸림돌이었다. 국내에서 멜로 영화는 크게 사랑받지 못하는 장르다. 200만의 관객 동원이 '대박'에 가까운 결과일 정도다. 1년 중 천만 영화가 세 편이나 쏟아지는 현실에서 멜로는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는 장르다. 아울러 입증되지 않는 신인 감독이었기 때문에 시나리오 수정 요구가 심했다. 정우성은 일부 제작사의 요구가 자신이 느낀 이 시나리오의 미덕을 해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해도 안 될 것 같아서, 같이 해보자고 했어요. 철이 없어서 할 수 있었던 거죠. 이 감독과 제가 그렇게 친하고 살가운 관계가 아니에요. 감독이나 배우나 같이 만나면 하는 얘기들이 영화인을 양성하는 구조가 아니라고 한탄해요. 여기저기서 많이 듣죠. 그런데 말만 하지 실행은 못하고 있어요. 이런 부분은 선배로서 먼저 다가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선배가 해야될 일이 맞죠."
 
배우 정우성. 사진/CJ엔터테인먼트
 
"마이너시장이 필요하다"
 
장고 끝에 내린 결정은 정우성에게 큰 숙제를 안겨줬다. 작품에 배우로서 임하기도 쉽지 않은데, 제작자의 역할까지 해야 했다. 투자배급사를 만나 세부 사항을 합의해야 할 뿐더러 크랭크인 후 촬영 외적인 부분에서도 관여할 일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주연배우로서 출연도 하고, 영화계 선배 역할도 해야 했다. 일각에서는 "사공이 많아 영화가 산으로 갈 것"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영화는 기억상실이라는 뻔한 소재임에도 색다른 느낌의 감성을 전달한다. 첫 제작자, 첫 장편 연출자가 만들어낸 결과물 치고는 수준급이다.
 
"되도록이면 바람직한 선배의 모습이 되려고 했어요. 그나마 더 경험과 경력이 있어 노하우가 있는 제가 선배로서 도와주려고 했어요. 현장에서의 미숙함을 바른 모습으로 채워주려고 했습니다. 선배로서 책임감도 보여주려고 했어요. 배우는 감성이 중요한 직업인데, 제작파트에 있어서만큼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판단하려고 했죠. 결과물이 우스운 꼴로 남을 수도 있잖아요. 저도 우려를 많이 했고요. 제작자의 위치에서 월권으로 느껴질 부분은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객관적인 주변 정황을 합쳐서 매번 올바른 선택을 하려고 했죠."
 
첫 제작자로서 일단 절반 이상의 성공이 예견된다. 멜로와 미스터리를 섞은 '나를 잊지 말아요'는 후반부 강렬한 반전과 함께 사랑의 위대함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기대 이상"이라는 의견이 다수다. 정우성은 자신이 해보지 않았던 제작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영화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간 문제라고 생각됐던 부분에 대한 개념이 명확히 정립됐다고 한다. "전 영화 참여를 할 때 배우 역할 외에 여러 면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사람 중 하나여서 영화 제작시스템의 문제점을 꽤 알고 있었어요. 그런 부분들이 제작자로 참여하면서 확실히 정립이 됐어요."
 
정우성은 가장 변화가 필요한 부분으로 '마이너 시장의 필요성'을 꼽았다. 영화 스태프나 배우들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리스크가 적은 시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현재 영화 시장은 마이너와 메이저가 혼재돼 있어요. 메이저 안에 실력이 입증되지 않은 스태프들이 들어와서 좌충우돌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 좌충우돌이 영화의 퀄리티 혹은 미세한 디테일을 좌지우지해요. 그렇기 때문에 중저예산의 리스크가 적은 시장이 만들어져야해요. 그곳을 통해서 실력이 입증된 선수들이 메이저로 넘어오면, 같은 비용이 들더라도 문제점이 줄어들겠죠. 지금 영화계는 '모 아니면 도'예요. 게다가 수익성 때문에 다양성의 부재가 있죠.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실험적인 영화를 할 수 없어요. 이걸 불만으로만 얘기하면 안되고 실천해야 돼요. 그래야 영화계가 더 건강해질 거라 봐요."
 
배우 정우성. 사진/CJ엔터테인먼트
 
"나는 철저한 낭만주의자"
 
그의 말을 들어보니 단순히 철이 없어서 제작을 시작한 것만은 아니었다. 마이너시장을 얘기할 때의 정우성의 눈은 불꽃이 튀어오르는 듯 강렬했다. 목소리에도 힘이 실려 있었다. 지금 느끼는 열정을 지속시키려는 의지가 있는지 궁금했다.
 
"저는 앞으로 계속 더 할 거예요. 꼭 배우로 참여하지 않더라도 제작만 할 수도 있어요. 제작을 위해 배우로 참여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후배들끼리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노력은 지속할 거예요. 물론 시나리오가 매력이 있으면 참여하겠죠. 독립예술 영화 같은 경우 개인의 자본으로 개인의 철학을 담는 영화예요. 그게 아닌 자본을 투자 받아서 자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영화 시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비록 목적은 정당하더라도, 실천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정우성은 '나를 잊지 말아요'를 통해 선배 영화인으로서 첫 발을 뗀 셈이다. 일단은 치열한 계산보다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나선 경우다. "저는 철저한 낭만주의자입니다. 낭만이라 하면 개인적 감정을 들여다보고 느끼는 거고, 그게 따뜻할 때 풍부해지는 거잖아요. 요즘 보면 '낭만 상실 시대' 같아요. 낭만에 대한 갈증이 있으니까 '응답하라 1988'도 인기가 있는 것 같고요. 저만큼은 낭만을 지키려고 해요. 이번 것도 저만의 낭만과 이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죠."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 정우성은 최근 10년 간 기억을 잃은 변호사 석원으로 등장한다. 늘 멋진 모습을 선보였던 정우성은 이번 작품에서도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훔칠 것으로 보인다. 상대역이었던 김하늘 역시 이 영화를 성공시키고자 하는 마음에 더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기존 관행과 다르게 출발한 '나를 잊지 말아요'에는 정우성, 이윤정, 김하늘의 감성이 짙게 묻어있다. 정우성의 낭만이 가득 담긴 '나를 잊지 말아요'는 지난 7일 개봉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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