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혁신부재'에 대한 답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찾고 있다.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모바일 결제시스템 '삼성페이'와 스마트홈의 기술 기반인 '스마트싱스', 스마트워치 '기어S2' 등도 실리콘밸리가 모태다.
부족한 부문을 외부로부터 끌어온다는 긍정론부터 실리콘밸리만 쳐다본다는 우려까지, 다양한 해석들이 뒤따르고 있는 가운데 삼성의 전략 수정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삼성은 그간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통해 세계시장에서의 입지를 굳혀왔다. 소니, 노키아, 애플 등이 쫓아야 할 '무버'였으며, 벤치마킹이 추격의 방법론으로 사용됐다. 이는 '카피캣'(모방자) 논란과 함께 삼성을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 이동케 했다.
실리콘밸리에 결집한 삼성, 인수합병부터 연구개발까지 활발
삼성이 퍼스트 무버로 입지를 수정하면서 실리콘밸리에 대한 집중도도 높아졌다. 글로벌 IT시장을 주도하는 혁신의 중심지 실리콘밸리에서 사물인터넷(IoT), 디지털 헬스케어 등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지속가능의 해답을 찾겠다는 의지다.
삼성은 그 일환으로 SSIC(전략혁신센터), GIC(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 SRA(리서치아메리카)를 차례로 실리콘밸리에 설립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아우르는 개방형 혁신 조직이 목표다. 스타트업의 소프트웨어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인수합병(M&A)도 세밀하게 진행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미주총괄 디바이스솔루션(DS) 신사옥.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산하인 SSIC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부품의 성장동력 발굴을 목표로 하고 있다. IoT 기기 개발 플랫폼인 '아틱(ARTIK)' 모듈이 SSIC 작품이다. 미국의 '스마트싱스'와 '루프페이' 인수를 주도한 GIC는 완제품 분야 혁신에 주력한다. 벤처투자, 인수합병, 스타트업 기업 발굴 및 인큐베이팅 등을 진행 중이다. 다양하게 퍼져 있던 연구소도 지난 2014년 12월 실리콘밸리 마운틴뷰 SRA 사옥으로 집결시켰다.
가시적인 성과도 뒤따랐다. 루프페이 인수를 통해 삼성페이를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오픈소스 기반의 스마트싱스 인수로 스마트홈 시장 선점에 한발짝 다가섰다. 지난해 출시된 스마트워치 '기어S2'의 라운드형 디스플레이와 회전형 베젤, 삼성페이의 스와이프 업, 지문인식 등도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했다.
관성도 여전…"몸집 커지면서 속도도 느려졌다"
동시에 실리콘밸리만 쳐다본다는 자성론도 안팎에서 제기됐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사물인터넷, 스마트홈이 뜨고 있지만 여전히 실적의 큰 비중은 스마트폰"이라며 "그 다음을 이을 대안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각 사업부가 실리콘밸리만 쳐다보는 형국"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말로는 경쟁사인 애플과 구글에 대한 의존이기도 했다.
애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 사진/ 뉴시스
이는 삼성의 뿌리 깊은 패스트 팔로어 전략에 기반한다. 여전히 관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삼성 스마트폰이 '옴니아'에서 '갤럭시'로 진화하기까지 애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게 대체적 의견이다. 모바일 결제시스템 역시 마찬가지. 애플은 지난 2014년 10월 애플페이를 상용화했다. 삼성은 10개월이 지나서야 삼성페이를 내놨다. 애플이 시장을 창출하면 그에 대한 대응이 삼성의 전략이었다.
삼성의 비대해진 조직에 대한 지적도 있다. 데이비드 은(David Eun) 삼성전자 GIC 사장은 "소프트웨어 혁신은 대부분 작은 스타트업 기업에서 나온다"며 "그러기엔 삼성전자는 규모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내 스타트업에 주목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전자 규모가 예전에 비해 몰라지게 비대해지면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혁신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삼성이 지난해 대규모 조직개편과 함께 조직을 재정비한 것도 같은 진단에서 나온 조치다. 한 관계자는 "예년에 비해 확실히 속도가 느려졌다"며 "의사결정 과정은 물론 시장의 트렌드 변화에 대한 대응도 느려졌다"고 말했다. 제품개발에서부터 생산과 마케팅, 유통 등을 모두 신경써야 할 정도로 몸이 무거우니 급변하는 IT 흐름을 쫓기 벅차다는 설명이다.
삼성이 제3의 산업혁명을 몰고올 것으로 평가되는 3D프린터 사업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도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9일(현지시간) 폐막한 CES 2016에서 차세대 주연을 예약한 드론 사업도 지난해 연말에서야 부사장급을 책임자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무선사업부 내 꾸렸다. 이건희 회장이 강조한 '마하경영'과는 정면으로 배치될 정도로 그간의 장점도 취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