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여름 전국을 뒤흔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박근혜 정부의 초동 대처 및 확산방지 실패로 커진 인재였음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그러나 감사원이 보건복지부에 당시 관계자들에 대한 해임·강등·정직 등 중징계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장관이었던 문형표 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은 징계 요구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감사원은 14일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질본) 등 18개 기관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10일~10월29일 실시한 ‘메르스 예방 및 대응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지난 2013년 7월부터 한국 정부에 메르스 연구와 병원 내 감염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지속적으로 권고했지만 질본은 '메르스 대책반'을 운영하면서도 확산 양상과 해외 대응 사례에 대한 연구·분석은 실시하지 않는 등 사전 대비를 소홀히 했다. 또 작년 5월18일 최초 환자(1번 환자)의 신고를 받고도 34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검사를 실시했다.
여기에 질본은 메르스의 전염력을 과소평가해 5월20일 평택성모병원 역학조사를 하면서 초기 방역망을 1번 환자가 입원했던 병실로만 한정하고 의료진 등 20여명만 격리했다. 1번 환자가 일상 접촉을 통해 같은 층 다른 병실 환자들을 감염시킬 가능성은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역학조사를 종료한 것이다.
그 결과 1번 환자와 접촉했던 14번 환자 등 5명이 격리 대상에서 누락됐고, 이들이 삼성서울병원(삼성병원) 등 7개 병원을 경유하면서 대규모 3차 감염자를 발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더 심각한 것은, 당시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대책본부)가 초기 방역조치 실패를 인지하고도 내부정보 공유는커녕 감추기에 급급했다는 점이다.
대책본부는 5월28일 1번 환자와 다른 병실에 있었던 6번 환자의 확진판정으로 초기 방역 실패를 인지했다. 그러나 “메르스 감염력이 크지 않고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병원명 비공개 입장을 고수하는 등 적극적인 방역 조치를 강구하지 않았다.
삼성병원도 관련 정보를 은폐해 사태 확산에 일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병원은 14번 환자의 평택성모병원 경유 사실을 알면서도 병원 내부 의료진에게 공유하지 않았다. 의료진은 14번 환자를 응급실에서 치료, 결국 병원 내 감염을 초래했다.
더구나 삼성병원은 5월30일 대책본부로부터 14번 환자 접촉자 명단 제출을 요구받은 후 곧바로 주소와 연락처가 포함된 678명의 명단을 작성했지만, 그중 일부인 117명 명단만 제출했다. 나머지 명단은 이틀 뒤 6월2일에야 제출하는 등 역학조사 업무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이에 따라 노출환자에 대한 추적조사와 보건소를 통한 격리 등 후속조치가 7일간 지연돼 추가 확산 방지 기회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 결과를 토대로 방역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한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 등 관련자 16명을 징계(정직 이상 중징계 9명)하도록 복지부에 요구했으며, 삼성병원도 관련 법률에 따라 제재하도록 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항이라는 점을 감안해 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공직사회에 경각심을 고취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당시 대책본부장이었던 문형표 전 장관은 징계 대상에서 제외됐다. 감사원 측은 “실무자들이 문 장관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고, 문 장관의 지시가 이행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또 조사는 했지만 (기존에 알려진 잘못 외에) 새로 확인된 부분이 없어서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6월 1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를 찾아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 상황에 대해 보고받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