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는 되고…이정렬은 안 되고?

변호사등록심사위 '이상한 심사 잣대'
변협·서울변호사회 "기준이 뭔지 혼란"

입력 : 2016-01-25 오후 8:02:35
'성접대 의혹'으로 취임 6일 만에 퇴임한 김학의(60·사법연수원 14기) 전 법무부차관이 변호사로 등록하면서 법조계가 술렁이고 있다. 김 전 차관의 변호사 등록 신청에 대해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가 제시한 명시적인 등록 불가 의견을 변호사등록심사위원회가 뒤집었기 때문이다. 
 
서울변호사회는 지난 12월15일 김 전 차관의 변호사 등록신청에 대해 "변호사법상 '공무원 재직 중 위법행위를 한 경우'에 해당해 퇴직한 것"이라며 "이 같은 사정은 김 전 차관이 변호사로서 직무를 수행함에 현저히 부적절한 것으로, 변호사 등록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결정, 등록 불가 의견을 냈다. 서울변호사회의 불가 결정은 김 전 차관의 등록 재신청에 대한 최종 심의 결과였다. 
 
김 전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 의혹 사퇴 
 
김 전 차관은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판을 짠 일명 '별장 성접대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2013년 3월 퇴임한 뒤 경찰조사를 받다가 2014년 7월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다.
 
그러나 경찰에 이어 검찰 조사가 진행되면서 서울변호사회는 등록신청 철회를 권고했고, 김 전 차관은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2015년 12월 등록을 재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당시 서울변호사회는 검찰이 김 전 차관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김 전 차관의 변호사 등록 신청을 재차 거부했다. 
 
하지만 김 전 차관은 등록 신청을 고수했다. 서울변호사회는 등록 불가 의견을 붙여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로 넘겼다. 이에 대한변협은 변호사등록심사위원회를 열어 심의를 요청했고 변호사등록심사위는 지난 주 등록을 허가했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1일 서울변호사회 회원으로 등록을 마쳤다. 그는 언제든 서울 지역에서 변호사로 개업하거나 로펌 중역으로 취업할 수 있게 됐다.
 
심사위 "직무에 관한 위법행위 없었다"
 
문제는 김 전 차관에 대한 등록 허가 이유다. 등록심사위는 김 전 차관에게 직무에 관한 위법행위가 없었다며 등록을 결정했다. 그러나 현직 고위 검찰간부로 있으면서 건설업자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에 연루돼 경찰과 검찰조사까지 받은 전력에 비춰볼 때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검찰은 조사를 거쳐 무혐의 처분했지만 서울변호사회가 끝까지 등록 거부 의견을 낸 이유를 곱씹어보면 쉽사리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징계를 피했지만 당시 그가 법무부 차관이라는 최 고위직인 데다가 의혹이 제기되고 얼마 안 되어 사퇴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때문에 김 전 차관의 변호사 등록 결정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등록 거부 의견을 낸 서울변호사회는 물론 대한변협 내부에서도 논란이 큰 것으로 감지되고 있다.
 
이와 함께 변호사 등록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한 등록심사위가 오히려 기준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변협과 완전 독립·비공개 기구
 
등록심사위는 변호사법상 대한변협과는 완전히 독립된 별개 기구다. 게다가 비공개 기구다. 위원 구성도 '법원행정처장이 추천하는 판사 1명과 법무부장관이 추천하는 검사 1명, 변협 총회에서 선출하는 변호사 4명, 변협회장이 추천하는 법학교수 1명과 경험과 덕망이 있는 변호사가 아닌 자 2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결 정족수는 과반수다. 변호사가 4명으로 구성원 중 가장 많지만 과반을 넘지 못한다.
 
등록여부를 등록심사위가 결정하면 대한변협은 물론 소속 변호사회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반면, 등록은 허가가 원칙으로, 대한변협이 변호사 등록을 불허하려면 변호사법상 반드시 등록심사위를 거쳐야 한다.
 
이렇다 보니 지방변호사회나 대한변협조차도 이해를 못하는 등록 결정이 적지 않다. 특히 사고를 내고 쫓겨난 전관들이 눈에 많이 띄인다. 그중에는 성추행으로 옷을 벗거나 스폰서를 받고 조직을 떠난 전관들도 있다.
 
2012년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최 모 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는 그해 9월 변호사로 등록해 대형로펌에서 근무 중이다. 최 전 부장검사는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서 정직 3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받고 징계절차가 마무리된 후 자진 사퇴했다.
 
"성추행 판사도 직무 관련 위법 아니다"
 
2011년 4월 지하철에서 시민을 성추행한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됐던 황 모 전 서울고법판사도 법원 퇴직 직후 석달만에 변호사로 등록하고 활동하고 있다. 황 전 판사는 대법원이 징계를 검토하자 즉시 사표를 냈다. 징계처분을 피하기 위해서 선수를 친 것이다. 대법원도 '직무에 관한 위법행위가 아니므로 의원면직 제한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표를 수리했다. 황 전 판사는 피해자와 합의한 뒤 고소가 취하되면서 형사처벌도 피했다.
 
'스폰서 검사' 사태 때 면직 처분된 박기준 부산지검장도 면직 8개월 만인 2011년 2월 변호사로 등록됐다. 그는 '스폰서 검사'들의 비위 의혹 진정을 대검찰청에 보고하지 않은 사실 등이 드러나 면직 처분을 받았다. 당시 박 전 지검장은 변협의 변호사 등록심사위원회에 직접 참석해 "물의를 일으킨 것은 죄송하지만 면직처분을 받을 만한 비위는 저지르지 않았다"고 읍소했다. 등록심사위는 박 전 지검장의 등록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후 대법원은 박 전 지검장에 대한 면직 처분이 정당하다고 확정 판결했다. 박 전 지검장은 로펌 고문으로 있다가 올해 총선을 겨냥해 울산 남갑에 예비후보자로 등록했다.
 
"불륜은 사적 행위…직무와 무관"
 
최근에는 희대의 사법연수원 불륜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여성 변호사도 등록했다. 등록심사위는 "부적절한 행동으로 정직 3월, 영리활동금지위반으로 감봉 3개월의 징계처분을 받은 사실이 인정되지만 이는 공무원 재직 중 사적 영역에서 발생한 것으로써 공무원의 재직 중 직무와 관련한 위법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부러진 화살' 사건 합의 공개로 징계를 당한 뒤 2013년 6월 퇴임한 이정렬(48·23기)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지금까지 변호사로 등록을 못하고 있다. 이 전 부장판사는 병중에도 적극 소명했지만 당시 등록심사위는 "공무원 재직 중 직무상 징계를 받아 변호사 등록이 부적당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김 전 차관은 서울변호사회의 등록 거부 의견에 이렇다 할 적극적인 소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변호사회 관계자는 최근 등록심사위의 등록 결정에 대해 "일관성이 없어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김 전 차관에 대한 등록 거부 의견은 변함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변협 관계자도 "김 전 차관의 경우 무슨 이유에서 직무관련성이 없다고 봤는지 알 수 없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변호사등록심사 규정에 대한 개정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약 3년만에 변호사로 등록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그는 건설업자로부터 '별장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여 사퇴했으나 변호사등록심사위원회는 "직무와 관한 위법사항이 없었다"며 변호사 등록을 허가 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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