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경제는 심리로 통한다. 경제성장률, 무역수지, 외환보유고와 같은 객관적 수치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살림살이가 나아질 것이라는 실생활에서의 각 경제주체들의 기대심리가 실물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경제는 분명 '위기'다. 거시적 지표 등 경제관련 통계는 양호하지만,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마치 ‘끓는 물 속의 개구리’와도 같다. 더 큰 문제는 한 번 기울어진 추세는 되돌리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휴대폰, 자동차, 철강 등 경쟁력 있는 주요 수출품목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경제가 좌초 중이라는 극단적 위기론까지 나온다. 우리경제가 언제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설비투자 감소,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성장률,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와 헬조선, 흙수저·금수저론에서 보이듯 세대간 대립까지 내외부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철저한 분열과 대립이다.
경제성장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다. 꼭 필요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도,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하는 것도 국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것이 의회민주주의 원리다. 문제는 민생을 걱정해야 할 국회를 정작 국민들이 걱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데 있다.
경제관련 법안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가로막혀 국회에 계류되고 있는 상황은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당초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기대됐던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안'(원샷법)은 결국 처리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선거구 획정 문제를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나서면서 본회의 자체가 무산됐다. 여야 간의 합의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 집권정당 시절에 추진하던 정책을 돌연 의료민영화라는 이름으로 반대하고,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사항도 되돌아서는 순간 파기되어서야 정치가 신뢰받기는 어렵다. 경제가 정치화되어서는 해답이 나올 수 없다.
이런 와중에 경제계를 중심으로 경제활성화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은 벌써 수십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기록적인 한파에도 늘어나는 서명 인원은 대한민국 정치가 국민을 얼마나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구조적인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어려움이 국회에 발목 잡혀있는 경제활성화 법안 통과 하나만으로 모두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병통치약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경제활성화를 위해 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지원하고, 제조업과 비교해 낮은 생산성을 보이고 있는 서비스업의 발전방향을 모색할 법안들을 처리하는 것은 국회의 '의무'다. 국회에서 통과한 법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민간의 역할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선거구 획정 역시 중요하다. 그렇다고 경제법안의 처리 조건이 될 수는 없다. 입법권과 국회선진화법을 무기로 여야가 법안을 흥정하는 구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살리기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경제관련 법안들이 국회를 조속히 통과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여야가 총선을 앞두고 목놓아 외치는 '민생 해결'이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