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증권이 '쉬운 해고' 물꼬 텄다"…노동계, 금융권 확산움직임에 초긴장

불똥 튄 기업은행 "우리와 무관" 해명…은행권, 산별 임단협서 성과연봉제 도입 추진

입력 : 2016-02-04 오후 6:32:40
금융업권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성과주의 도입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IBK투자증권이 도입한 저성과자 해고 프로그램이 업권 전체로 확산되는 것은 아닌지 긴장하고 있다. 노조의 반발에 막혀 아직까지 활로를 찾지 못한 은행업권은 회사 내부에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리면서 호봉제를 기반한 성과급제 손보기에 나서고 있다.
 
◇직원 찬성률 64%…"회사 눈치 때문" 논란
 
IBK투자증권의 저성과자 해고 규정이 도입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힘없는 노조'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측이 취업 규칙을 변경하려면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는 노조 구성원 수가 전체 직원의 과반이 넘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IBK투자증권의 노조는 구성원 수가 과반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측은 노조가 아닌,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했다. 지난해 말 진행된 직원 투표 결과, 찬성률은 64%를 기록했다.
 
김경수 사무금융노조 증권업종본부 대외협력국장은 "투표가 부서별, 지점별로 진행되다 보니 개별 직원들은 회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며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 상황이라 한계가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측이 직원투표를 진행하는 동안  노조 또한 사측과 협상을 진행해왔다. 저성과자 해고 프로그램 도입에 합의하는 대신에 사측이 제시한 카드는 기존에 예정된 올해 임금 삭감 폭을 줄여주겠다는 약속이었다. 저성과자 해고 가능 방침에 노조가 크게 반발하지 않았던 이유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번 결정에 반발하며 지난 달 초 IBK투자증권 노조를 소속 지부에서 제명했다. 금융권 전반으로 ‘쉬운 해고’가 빈번해질 수 있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노조의 책임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었다.

◇증권사들 "또 칼바람 부나" 뒤숭숭
 
증권사가 금융권 최초로 정부의 '쉬운 해고' 지침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에 증권가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최근 몇 년간 불황으로 구조조정 한파에 시달렸던 증권가에 또다시 감원의 칼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란 우려에서다. 가뜩이나 교묘한 방식으로 직원 퇴출을 자행했던 증권사들에게 이제는 ‘합법’이라는 무기까지 쥐어진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 A씨는 "IBK투자증권이 이번에 전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해졌다"며 "다른 증권사도 IBK투자증권의 사례를 근거로 저성과자 해고 규정을 도입할 가능성이 커졌고, 특히 노조가 아예 없거나 구성원이 적은 증권사의 경우 직원들의 해고가 더 잦아질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IBK투자증권의 선례를 계기로 저성과자 해고 방침이 확산되고, 증권가에 ‘생존을 위한 성과 만능 주의’가 팽배해지는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증권사 지점장으로 근무했던 업계 관계자 B씨는 "영업 성과가 ‘생존’과 직결된 회사의 직원들은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고, 결국엔 사고를 칠 확률도 높아진다"며 "사용자 측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거나 업무 영역을 확대하지 않고 직원들만 옥죄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은행들 "임단협서 성과연봉제 도입 논의"
 
은행권에서 불똥이 튄 곳은 기업은행(024110)이다. 금융권에서는 IBK투자증권의 움직임이 모회사인 기업은행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기업은행을 성과연봉제 적용 '1순위'로 삼고 있다.
 
기업은행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 공공기관 9곳 가운데 가장 인력 규모가 큰데다 민간금융회사와 업무 영역도 가장 유사하다. 민간은행에 성과주의를 이식하기 전에 기업은행을 모범 모델로 삼겠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노사 협력 담당 관계자는 "시중은행 성향에 가까운 기업은행이 은행권 가운데 가장 먼저 도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현재는 은행 경영진이 먼저 나서기 부담스러우니까 증권계열사부터 시작한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은행에서는 "IBK투자증권의 결정"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나기수 기업은행 노조위원장 등은 아직까지 사측과는 성과연봉제 도입 논의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보수적이어야 할 은행업 특성상 성과주의가 맞지 않고 협엽이 이뤄지는 업무 특성상 개인 성과를 평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은행, 우리은행(000030) 등 시중은행들은 자체적으로 TF를 구성하면서 성과주의 도입 군불 지피기를 하고 있다. 우리은행 인사 담당자는 "집단성과제에서 (직원)개별성과제로 바꿔야하는데, 사내 TFT를 꾸려 가동중"이라고 밝혔다.
  
◇양대 노총, 인권위 진정 제기 등 강력반발
 
노동계는 정부가 지난달 22일에 발표한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내용을 규정한 노동개혁 2대 지침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지침에는 구조조정 등의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노조와의 합의 없이 일반 해고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의 양대지침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소속지부에서 IBK투자증권을 제명했으며, 한국노총과 함께 정부가 시행한 양대지침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며 국가인원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17개 은행 등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이날 오후 은행장들을 모아 '성과주의 확산 도입방안을 논의했다. 은행장들은 2016년도 임금단체협상에서 성과연봉제 도입과 대졸 초임 삭감을 추진하겠다는 의견을 모았다.
 
금융노조 측은 노조가 교섭 요구안을 내놓기도 전에 사측이 먼저 회동을 갖는 것부터가 이례적이라며, 금융위가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며 분위기를 조성하자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금융위원회는 자율적 노사협의를 빙자해 전체 금융산업에 성과연봉제를 강요하고 있고, 사측도 이에 적극 호응하며 기민하게 나서고 있다"며 "성과제 도입 시도를 중단하지 않으면 총력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이종용·이혜진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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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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