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시행되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두고 은행권과 증권업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은행의 560조원에 달하는 투자일임업 허용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저금리 지속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당국에 투자일임업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증권업계는 반대하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할 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는 은행권의 적극적인 투자일임업 허용 요구에 따른 것이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은 지난달 27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연합회, 신용정보원, 금융연수원, 국제금융센터, 금융연구원 공동 신년간담회에서 투자일임업 허용을 요구했다.
이날 하 회장은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면 고객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각종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할 수 있다"며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은행권이 투자일임업 허용을 요구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달 출시되는 ISA 때문이다.
ISA란 계좌 하나에 예·적금과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꺼번에 넣어 운용하면서 세제 혜택까지 볼 수 있어 이른바 '만능 통장'으로 불린다. 저금리 기조 속에 돈 굴릴 곳이 마땅치 않은 고객이 ISA에 대거 몰릴 것으로 예측되면서 도입 첫해 시장 규모만 11조원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현재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르면 은행은 계좌 가입자가 금융상품을 지정하는 방식의 신탁형 ISA만 판매할 수 있다. 신탁형은 불특정 다수에게 같은 형태로 판매하기 때문에 관련 규정상 적극적인 설명이나 홍보가 불가능하다.
또 신탁법상 은행은 자기은행 상품을 ISA에 편입할 수도 없다. 현재 규정대로라면 ISA가 증권사에 쏠릴 가능성이 큰 셈이다.
반면 투자일임형 ISA의 경우 고객 투자판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일임 받기 때문에 고객에게 편입 상품을 소개할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ISA 판매가 훨씬 수월해지는 것이다.
은행권의 이 같은 요구에 증권업계는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지난 4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것은 국내 금융업 체계의 근본을 흔드는 것"이라며 "은행에 자산운용전문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투자상품을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손실 발생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투자일임업 잔고는 지난 2010년 267조원에서 2014년 433조원, 지난해 9월 기준 560조원으로 급성장하고 있다"며 "은행과 증권사가 이를 두고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은 은행의 강점인 접근성과 단점인 불완전판매 우려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은행권과 증권업계가 투자일임업 허용을 두고 갈등하고 있다. 은행권은 고객의 선택권을 넓히기 위해 투자일임업 허용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증권업계는 불완전판매 우려 등으로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을 반대하고 있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왼쪽)과 황영기 금융타자협회장. 사진/뉴시스
김형석 기자 khs8404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