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은행을 포함한 34개 금융기관을 회원사로 둔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가 현재 5000만원 수준인 은행원의 초봉을 낮추겠다고 밝히면서 은행 노사간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은행 사측과 노조의 상위단체인 사용자협의회와 전국금융산업노조가 올해 산별교섭을 통해 성과급 확대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신입사원 초임 삭감안건이 돌연 추가되면서 갈등폭이 확대되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임단협을 앞두고 사측 대표자들이 이같은 조정안을 들고 나오자, 각 은행 직원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총력투쟁을 불사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앞서 사용자협의회는 지난 4일 회원사 대표자 회의를 열고 성과주의 도입을 통해 은행원 초봉을 타 산업과의 형평성에 맞게 현실적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하영구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장(은행연합회장)은 "은행권의 현행 임금 및 보상체계, 고용구조 및 노동 관련법은 고도 성장 당시 제조업 위주의 산업구조에서 정착된 것으로 이제는 개편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기존 고임금 호봉체계에 맞춰 신입직원 초임이 결정되다보니 청년정규직 채용 회피와 중장년 근로자 상시퇴출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해 신한·우리·국민·KEB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5000만원이다. 신한은행 신입사원 연봉은 5500만원으로 가장 높다. 이어 우리은행 5100만원, 국민은행 4900만원, KEB하나은행 4800만원 순이다.
이와 함께 하 회장은 "금융공기업 보다 민간기업이 성과연봉제가 더 절박하고 필요한 만큼 정부의 금융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 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적용될 것"이라 밝혔다.
성과주의 도입 논의가 초임 삭감으로 확대된 것에 대해서는 은행 내부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회사마다 신입 직원을 뽑는 기준이나 임금체계가 다른데 일괄적으로 내리겠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임금테이블이 바뀔 경우 기존 직원과 비교해 적은 연봉을 받는 사원들이 발생할 경우 직원간의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노조 홈페이지의 공개게시판에서도 "아무런 협의도 없이 신입사원 연봉이 타 산업보다 높으니 성과주의를 도입해서 무조건 낮추라는 정부의 발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은행원의 글도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압박에도 성과주의 도입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은행들이 신입사원 초임 삭감안을 내놓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노조 관계자는 "경영자들이 결정한 신입사원 및 기존 직원들의 연봉을 손대겠다는 것은 본인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라며 "성과급제 확대 논의가 어려우니 초임 삭감을 볼모로 내 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성과급을 확대하는 방향의 성과주의 도입은 노조의 반발에 막혀 있지만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상당수 시중은행들이 성과연봉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집단성과제에서 개별 성과제로 전환하기 위한 TFT도 꾸린 상태다.
아직 논의 수준이지만 근속년수가 쌓이면 급여가 자동으로 오르는 연봉제와 직급별 연봉 상한선을 병행하거나 직원 개인별 평가를 도입하겠다는 등 은행별로 다양한 도입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원회가 초임 삭감이나 정부의 일반 해고 지침 적용 등을 무리하게 추가로 강요하고 있다는 반발이 나온다.
금융노조는 앞서 성명서를 통해 "금융위가 금융공기업에 이어 민간 금융회사에까지 성과연봉제 도입을 압박하는 것은 현 정권이 독재정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라며 "금융위가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며 분위기를 조성하자 은행들도 적극 호응하며 기민하게 나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나기상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대변인은 "당초 금융당국이 얘기한 금융개혁의 핵심에 금융회사에 대한 경영간섭 축소, 낙하산 인사 근절 등이었다"며 "금융산업을 망친 관치금융은 개혁하지 않고 성과연봉제가 금융개혁인양 호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2일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금융노조가 성과주의 확대 규탄 결의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금융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