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논의하자는 데 지난해 말 합의했다는 미 언론의 보도가 나오자 정부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22일 “한·미는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주장 대응을 포함해 북핵·북한 문제와 관련된 제반 사항을 긴밀히 협의하며 공조한다”며 “한·미는 최근 정상회담과 통화 등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다뤄나가고 있으며, 어떠한 북한과의 대화에 있어서도 비핵화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비핵화 논의가 우선"이라며 “평화협정도 미·북 간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주체가 되어야 된다”고 말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은 21일(현지시간)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미국 정부가 북한 핵실험(1월6일) 수일 전 한국전쟁을 공식 종식시키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기로 북한과 은밀히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먼저 취해야만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지만 그런 전제조건을 포기하고 논의에 합의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연합뉴스>는 워싱턴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작년 말 평화협정 논의를 공식 제안한 후 북·미 비공식 외교채널을 통해 의사를 교환한 사실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같은 상황 전개는 얼마 후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그러나 이르면 이달 안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어 한 단계 매듭이 지어진 후에는 평화협정 논의를 위한 움직임이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특히 중국이 중재자로 적극 나선다면 논의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7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전환의 병행추진을 협상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중국이 안보리 대북 결의안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추후 평화협정을 논의한다는 약속을 연계시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비핵화 우선’ 입장을 고수하며 미국의 발목을 잡을 경우 임기 1년도 채 남지 않은 오바마 미 행정부가 평화협정 논의에 나설 동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북한의 평화협정 요구는 오랜 세월 이어진 것이지만, 특히 지난해 10월1일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총회 연설을 기점으로 집중 제기된 바 있다. 북한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자신들을 강하게 압박하는 성명이 채택된 직후인 10월17일에도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4차 핵실험 닷새 전인 1월1일 신년사에서도 평화협정을 요구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지난 1월1일 2016년 신년사를 발표하는 모습. 김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우리는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