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불법을 막는 합법의 힘, 필리버스터

입력 : 2016-02-26 오전 6:00:00
김인회 인하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0시간 18분의 토론. 은수미 의원의 테러방지법에 대한 토론시간이다. 김광진 의원이나 박원석 의원 등 다른 국회의원의 토론도 이에 못지않다. 인간의 몸이 이런 시간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강의에 익숙한 교수들도 2-3시간 강의는 힘들다.
 
이 정도면 토론은 토론이 아니다. 시간도 중요하지 않다. 온몸을 던지는 투쟁만이 선명하게 기억될 뿐이다. 거리와 현장의 투쟁과는 완전히 합법적이라는 점만 다를 뿐, 그 기세와 박력은 같다. 이렇게 국회의 무제한 토론, 일명 필리버스터는 국회의원이 국회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치열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투쟁방법임을 증명했다.
 
애초에 이번 사태는 벌어지면 안 되었다. 먼저 이번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법한 직권상정이다. 국희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은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 등 세 가지다. 테러방지법은 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굳이 해당하는 요건을 찾는다면 국가비상사태가 될 것이지만 지금은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다. 여기의 국가비상사태란 천재지변, 전시·사변의 경우와 같이 국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정도의 사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의 국회는 여야 대표의 회담이 거의 매일 이루어질 정도로 지극히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국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곧 국회의 높은 생산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일 국회가 법률안을 제대로 통과시키지 않는 것을 두고 정상적인 운영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자신이 국회를 법률을 통과시켜주는 통법부로 본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국회모독이다. 그리고 국회를 거치지 않고 통치를 하려는 독재자의 발상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의 테러방지법은 제출되지 않았어야 했다. 단순히 테러를 막는다는 추상적인 목적만으로는 현재의 테러방지법이 정당화될 수 없다. 현재의 테러방지법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테러방지법에 의하면 대테러 활동에 필요한 경우 국가정보원은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아니라 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의 허가나 대통령의 승인으로 감청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국가안전보장에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에 한하여 법원의 영장주의가 완화되었으나 테러 관련 정보의 수집이나 테러예방 활동을 위해서도 영장주의가 완화되는 것이다. 그만큼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는 침해된다. 나아가 국정원은 테러위험인물의 통신이용, 금융거래, 출입국정보 수집권을 갖게 된다. 국정원의 권한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정원의 권한남용을 막을 장치는 인권보호관 1명뿐이다.
 
지금까지 국정원은 국내 정치에 개입하면서 많은 문제를 낳았다. 국정원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내정치 개입을 금지한 국가정보원법과 위법선거를 금지한 공직선거법을 어기면서까지 국내 정치에 개입했다.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의 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사건(유우성 사건)에도 국정원이 관여되어 있다. 이 사건에서 국정원은 중국 공무소의 서류를 조작하여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려고 했다. 전형적인 국내문제 개입이다. 국정원과 검찰이 증거를 조작하면서까지 간첩으로 몰려고 했던 유우성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방지하기 위하여 테러방지법은 테러에 대한 정의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정치에 개입해 왔고 개입하려는 국정원이 테러업무를 총괄하는 이상 테러의 개념은 확대될 가능성이 극히 높다. 결국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반대하는 시민이나 단체에 대한 도구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정원의 개혁이지 국정원의 권한 강화가 아니다. 인권보호관 1명으로 국정원을 견제할 수 있다는 발상은 실소를 자아낼 정도다.
 
국회에서 벌어진 이번 사태는 당연히 여야 합의로 풀어야 한다. 그렇다고 이 말이 안철수 대표의 말처럼 여야의 책임이 같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 테러방지법을 둘러싼 사태는 정부, 여당의 불법과 억지로 시작되었다.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의 필리버스터는 국회법에 따른 합법적인 투쟁이다. 테러방지법을 제출, 직권상정하여 파탄 정국으로 몰고 간 정부, 여당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따라서 정부, 여당이 더 책임을 느끼고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국회의 정상적 운영과 높은 생산성의 비결이다. 문제를 일으킨 여당을 위해서도 테러방지법을 철회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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