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비례대표 공천에서도 상향식 공천 원칙을 지킬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김무성 대표가 "정치 생명을 걸고" 추진해왔던 상향식 공천제도의 형체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 위원장은 8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비례대표를 선정하는 방식이 조금 더 투명하고 폭이 넓어야 한다는 여러 기준이 있는데, 다 밟아서 하면 좋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서류심사만 하기도 벅차서 우리가 원하던 방식으로는 못 한다"고 못 박았다.
이는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구호로 지역구는 물론 비례대표도 직역별 공모를 통해 경선에 따라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을 주장해왔던 김 대표의 뜻에 배치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여야 합의 불발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가 무산된 후 이를 원형에 가깝게 실현시키기 위한 '안심번호'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친박(박근혜)계의 거센 반발을 받은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김 대표는 '당원 3 대 일반국민 7 여론조사'라는 변형된 상향식 공천제도를 가까스로 지켜냈다. 하지만 공천 실무를 담당하는 공관위원장을 친박계 뜻에 밀려 임명했고, 이한구 위원장이 전략공천 성격이 짙은 '우선·단수추천지역' 제도를 적극 활용하면서 상향식 공천 원칙의 균열은 점점 커지고 있다.
부산대 김용철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리더십이 부재했고, 본인을 능가하는 경륜과 세력을 갖춘 친박계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상향식 공천은 완전히 실패하고 깨졌다"고 평가했다.
특히 지난 7일 경선이 필요 없는 단수추천지역 9곳, 우선추천지역 6곳을 포함한 공관위의 1차 공천명단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큰 저항 없이 의결되면서 '상향식 공천은 끝났다'는 정치권의 평가가 우세해지고 있다.
다만 총선 공천의 주도권이 김 대표에서 이 위원장을 비롯한 친박계로 넘어가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김 대표가 부수적으로 누릴 수 있는 이점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야권의 분열상과 대통령의 (견고한) 지지율이 후광 효과를 발휘해주는 시점에서 김무성 대표가 성공을 못 거뒀을 때 김 대표가 내지를 수 있는 변명은 '이한구'"라며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선거 책임론을 분산시킬 수 있게 된다"고 전망했다.
배 본부장은 이어 "(김 대표의 미온적인 대처에) '당 대표가 왜 해야 할 말을 못 하느냐', '박 대통령의 힘의 거대하구나' 등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는데 (둘이 맞물리면) 모든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가 박 대통령에게 가게 되고, 핵심적으로 (대선 등 총선 이후를 바라보는) 김 대표는 이번 총선의 거대한 태풍을 비켜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사진 왼쪽 두번째)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실시된 공천면접에서 이한구 공관위원장 맞은편에 앉아 면접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