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전격 방문하면서 20대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청와대는 ‘경제 행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는 박 대통령이 선거 한달여를 앞두고 대구를 방문한 것을 경제 행보로만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첫 일정으로 대구 동구에 위치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성과를 점검했다. 이곳은 전국 17개 센터 중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으로 박 대통령은 지난 2014년 9월 개소식 방문에 이어 약 1년 6개월 만에 센터를 다시 찾았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는 고용존과 전략산업 규제프리존의 운영을 본격화해 달라"며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정치적인 발언은 일절 없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이날 동선만으로도 정치색은 충분히 짙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센터가 위치한 동구갑은 현역인 류성걸 의원과 ‘진박’으로 분류되는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당내 경선을 준비하는 곳이다. 류 의원은 박 대통령과 정면 대결한 유승민 의원의 측근이다. 특히 옆 지역구인 동구을은 ‘진박’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출사표를 던진 곳으로 바로 유승민 의원 지역구다.
이어 박 대통령은 북구갑 지역에 있는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 국제섬유박람회장을 찾았다. 이곳은 현역인 권은희 의원과 ‘진박’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이 맞붙는 곳이다. 하 전 은행장은 친박 실세 의원의 낙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박 대통령이 세 번째로 방문한 대구 육상진흥센터는 정치적 상징성이 높은 수성갑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부겸 전 의원이 새누리당 소속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맞붙는 곳으로 대구 지역 첫 야당 국회의원 당선 여부에 관심이 쏠려 있는 곳이다.
박 대통령의 동선에 대한 정치적 해석을 의식한 듯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은 창조경제 등과 관련한 경제 행보”라며 “혁신센터 가운데 가장 성과가 좋은 곳이 대전과 대구여서 지난달 대전에 이어 이번에 대구를 방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으로 20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일명 ‘진박’(진실한 친박) 후보들에게 힘이 상당히 실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여론조사에서 현역의원들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김무성 대표를 향한 윤상현 의원의 막말 파문이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상태다.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을 계획하면서 감안하지 못했던 변수다. 막말 파문으로 친박계가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이 이런 분위기까지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윤 의원의 전화 통화 상대가 친박 핵심 인물로 밝혀질 경우 박 대통령의 노력도 큰 영향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화 통화 상대방이 친박 핵심으로 밝혀질 경우 새누리당은 더 큰 내홍에 휩싸이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친박계는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들과 당원들께서는 하루빨리 상황이 정리되길 바라고 계신다”며 “내홍에 사로잡혀 국정을 돌보지 않으면 국민들은 저희에게 더 큰 회초리를 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호 최고위원도 “우리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돌아봐야 된다. 전체는 부분에 우선한다”며 “이제 계파를 뛰어넘어서 당과 국가를 우선하는 대국적인 모습을 보일 때라고 생각한다. 큰마음으로 한발씩 양보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오전 단수추천 지역 4곳과 경선지역 31곳이 포함된 2차 공천안을 발표했다. 지난주 1차 발표 때의 논란을 의식한 듯 이번 경선지역 후보에는 현역의원이 모두 포함됐다. 특히 단수 추천된 인물 중 김도읍 의원만 넓은 의미의 친박으로 분류되고 나머지 이진복 의원과 홍문표 의원, 박선규 예비후보는 비박계로 분류된다.
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두번째) 등과 함께 입주기업인 솔티드벤터 조형진 대표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