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고수는 수를 열어둔다. 열어둔다는 것은 그 순간에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류의 수학자들이 그 경우의 수를 ‘무한’이라고 정의했던 바둑에서 수를 열어둔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바둑의 존재론적 본질일지도 모른다. 변화가 무한대이기 때문에 바둑에는 정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흑백의 균형적인 행마에 따라 최적의 수들을 미리 연구해 놓는 것이다.
고수들은 “바둑에서 정석은 익히되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주변 배석에 따라 정석은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그것이 바둑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고 바둑을 인생에 비유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알파고는 그 수를 닫아둔다. 하수라서 그런 것일까. 알파고가 그 가능성을 미리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하수라서가 아니라 닫을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무한을 정복할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고 보는 편이 더 냉정한 판단일지도 모른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은 1승4패로 끝났다. 인공지능과의 사투에서 이세돌이 졌다. 이는 인류사적 문명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것과 같다. 우리 국민들은 그 점에서 행운을 누렸다. 인공지능의 미래를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하고 열어둘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책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세기의 이벤트를 통해 눈과 귀와 손가락과 피부와 그 모든 것을 합한 감각으로 인공지능의 미래가 바로 우리 곁에 있음을 알게 됐다. 이런 행운은 이세돌이라는 불세출의 승부사 때문에 극대화될 수 있었다. 이세돌이 5대0으로 이겼거나 혹은 0대5로 패했다면 그 감동은 덜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스코어를 넘어 이세돌이 바둑을 통해 인간의 아름다운 상상력과 승부사적 영혼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이처럼 큰 감동은 없었을 것이다.
이세돌은 보이는 것의 패배를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의 승리를 쟁취한 진짜 고수가 됐다. 이세돌은 짧은 기간 벌어진 기계와의 전투를 통해 전혀 새로운 영웅의 서사를 썼다. 그것은 그가 대결이 시작되기 전에 말했듯이 인간의 아름다움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는 이번 대국과정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1200대 슈퍼컴퓨터의 가공할 힘으로도 도저히 이를 수 없는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그 경지란 무엇인가.
숱한 세간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이세돌이 1,2,3국을 내리 졌을 때 그는 끝없는 절망을 드러냈다. 그의 표정은 어떤 상대를 만났을 때도 경험하지 못했던 답답함과 무기력을 드러냈다. 절망에도 정점이 있다면 바로 3국에서 돌을 던지기 직전에 보여준 이세돌의 표정이 그랬다.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두려움, 어떻게 해도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바둑의 영토, 마지막 보루라고 여겼던 바둑이 인공지능에 지배당할지도 모른다는 그 절망감. 그것은 디스토피아적인 인류의 미래에 대한 예지적 절망감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세돌은 인간이었고 그것도 아름다운 인간이었다. 인류를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승부사였다. 4국의 반전은 1,2,3국의 모든 패배를 송두리째 뒤엎은 승리였다. 모든 절망을 걷어낸 위대한 승리였다. 그것은 인간의 투혼과 인간만이 가진 부족함과 인간만이 가진 비선형성과 인간만이 가진 상상력과 인간만이 가진 모든 가능성의 총화였다.
그렇게 그는 딱 한 번 알파고를 이겼다. 세 판의 절망을 딛고 바둑사에 기록될 ‘78번째’ 신의 한 수로 그가 바둑 인생에 쏟아부었던 그 모든 순간을 영원으로 기록했다. 그는 그렇게 기승전결 네 판의 스토리를 완성했다. 그가 기록한 영웅 서사에 대한민국을 넘어 온세계가 열광했다. 알파고의 아버지인 데미스 하사비스가 트위터에 썼듯 이세돌은 그 순간 구글 트렌드의 맨 꼭대기에 있었다.
5국은 후속편을 위한 하나의 에피소드였다. 이세돌은 4국에서 알파고를 이기는 법을 터득했다. 특히 백을 들고 이기는 법을 알았다. 그런데 무한의 승부사 이세돌은 5국에서 흑을 쥐겠다고 했다. 백으로 더 완벽한 알파고를 흑으로 이겨보고 싶은 승부사적 기질이 발동한 것이다. 그리고 4국에서 보여준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스타일로 5국을 두어갔다. 인공지능 알파고에 대한 인간의 숭고한 선전포고였다.
비록 그가 아깝게 졌지만 이세돌은 이 승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그러므로 이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시즌2에서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임을 알파고에게, 모든 과학자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에게, 나아가 인류 모두에게 예고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세돌의 위대함을 강조한다고 해서 알파고가 초라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인류는 이번 대결을 통해 위대함과 초라함을 동시에 느꼈을 것이다. 그 위대함과 초라함은 모두 인간을 기준에 둔 감정이다.
이번 대결을 통해 이세돌과 알파고는 위대함의 동시성을 보여 주었다. 프로기사 유창혁이 “알파고는 모든 수를 결정하고 닫아두는 하수의 행마를 보여준다”고 했지만, 그리고 자신이 불리한 4국에서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두기도 했지만, 이런 결점이 20년 뒤가 아닌 바로 ‘2016년’에 이세돌을 제압한 인공지능의 위대함을 가릴 수는 없다. 이세돌, 알파고가 보여준 위대함의 동시성과 함께 우리가 냉정하게 들여다봐야 할 지점은 미래의 비대칭성이다. 이세돌은 현실이고 알파고는 미래다. 세계 최고의 승부사를 제압한 알파고의 인공지능은 인류의 모든 것을 뒤바꿀 수 있는 일종의 혁명이다. 우리가 알파고의 두려움을 이세돌의 위대함으로 위안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승부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바둑의 경계를 넘는다. 올해 다보스포럼이 의제로 제기한 ‘4차 산업혁명’이 먼 미래의 일이 아님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미래는 우리 곁에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라는 미국 소설가 윌리엄 깁슨의 말도 수정돼야 한다. 알파고는 모든 인류에게 생중계로 경고한 미래의 선전포고와 같다. 이 숨막히는 혁명의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거대 양당의 수치스러운 진흙탕 공천 전쟁은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미래혁명의 시기에는 차원이 다른 미래의 정치세력이 필요한 법이니까.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