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남 몰래 선행하는 시민들이 진짜 영웅"

김영구 역장, "할 일 했을 뿐, 세간의 관심 부끄러워"
"'지하철 안전' 역장 혼자는 안돼…모두 함께 해야"

입력 : 2016-03-28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박용준기자]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은 손해를 보면서 위험에 처한 이웃들을 돕는 시민들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이 인터뷰도 나미씨 같은 분들과 하는 게 맞습니다."

김영구(57) 숭실대입구역 역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 17일 출근시간 숭실대입구역에서 급성심정지로 쓰러진 한 여성 승객을 구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김 역장은 여성 승객을 구한 사람이 자신이 아닌 나미(52)씨와 당시 함께 힘을 보태 준 다른 승객들이라고 말했다. 나씨는 김 역장을 도와 여성승객에게 인공호흡 등 응급처치를 한 시민이다. 다른 시민들도 손발을 주무르는 등 여성승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버렸다. 그들을 떠올리며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여성승객의 목숨을 구한 데에는 누구보다도 김 역장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김 역장은 2011년 10월 신대방삼거리역 역장을 맡았을 때에도 '묻지마 흉기난동' 범인을 제압해 많은 승객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무릎에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적지 않은 기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그러나 김 역장의 선행은 계속됐다. 선행으로 받은 보상금은 치료비가 없는 백혈병환자들이나 아동·노인들을 위해 기부했다. 신대방삼거리역장으로 근무할 때엔 취약계층을 위한 이미용 봉사도 했다.

앞으로 5년이면 정년을 맞이하는 그는 여생을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면서 "지금은 승객 안전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봉사"라고 말했다. 수차례 고사해 인터뷰가 어려웠지만 어렵게 설득한 뒤 김 역장을 만날 수 있었다. 

 

김영구(57) 숭실대입구역 역장. 사진/박용준 기자

 

 

지난 17일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그날도 오전 7시에 출근해 승강장에서 근무 중이었다. 8시7분쯤 전동차 한대가 들어오는데 승강장 대기석 의자에 앉아있던 20~30대 여성 승객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갑자기 앞으로 쓰러졌다. 급히 달려가서 확인해보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고 맥박이 약했다. 심정지라고 직감했다. 심폐소생술을 해야 했지만 여승객의 겉옷을 벗겨야 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옆에 서 있던 여성 승객 나미(52)씨에게 “겉옷만 벗겨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천만다행으로 나씨가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알고 있어 도움을 받았다. 동시에 다른 여성 승객 한 명이 쓰러진 승객의 다리를 주무르며 도와줬다. 그분들과 119응급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응급조치를 실시했다. 몇 분 뒤 다행히 쓰러진 승객이 의식을 되찾았다. 마치 내가 모든 일을 다 한 것처럼 보도됐는데 아니다. 이 인터뷰도 나씨와 다른 승객들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2011년에도 위험한 사건이 있었다.

그 때 신대방삼거리 역장을 맡고 있었는데, 출근길에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전동차에서 괴한이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려 승객 한 명이 부상을 당했다. 다른 승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대피하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역장인 나도 무서웠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역장이 도망치면 다른 승객은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에 죽기살기로 괴한과 몸싸움을 벌여 제압했다. 하지만, 그 일을 겪고 나서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한 때는 혈압이 210을 넘기고, 칼만 봐도 무서웠다. 아내가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기도 했다. 그 일로 상도 받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은 없나.

2013년 11월, 숭실대입구역 역장으로 부임한지 반 년 남짓 됐을 때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 숭실대 논술시험이 있던 날로 기억하는데 시험시간에 늦었는지 수험생 아들과 아버지가 급하게 승강장으로 뛰어 들어왔다. 가뜩이나 긴 계단을 오르면서 무리가 됐는지 아버지가 서둘러 가라며 손짓하고 아들을 먼저 보냈다. 그게 그 아버지와 아들의 마지막 인사였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곧바로 내가 10분 동안 심폐소생술을 했다. 갈비뼈가 다 부러질 정도 간절하게 했지만 결국 목숨을 구하지 못했다. 그때도 숭실대 ROTC학생들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내 주변을 둘러싸 막아주는 등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가슴이 아프다.

 

시민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안전은 역장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번에도 다른 승객들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어려웠을 것이다. 나야 역장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다른 시민들이 바쁜 출근시간 전동차를 몇 대나 보내고 같이 노력했던 모습을 떠올리면 ‘존경스럽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정말 미안한 일은 경황이 없어 같이 도와준 다른 승객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못한 것이다. 2013년에도 많은 승객들이 학생의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런 시민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직은 살맛이 나는 세상이다. 저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민영웅'이라고 부르는 분들도 많다.

무엇을 바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의상자로 선정되고 받은 포상금 100만원은 전액 백혈병환자에게 기부했다. 2011년 '묻지마 흉기난동사건' 이후에도 동작경찰서에서 30만원을 받았는데 10만원은 청운아동복지회에 기부하고 남은 20만원으로 신대방삼거리역 에스컬레이터 2곳 공사기간 동안 불편을 감수한 승객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어 따로 화환을 만들어 역사에 걸었다. 재작년 신대방삼거리 역장을 했을 때도 4년 정도 이미용 봉사를 했다. 앞으로도 봉사활동은 할 수만 있다면 계속하고 싶다.

생활 속 작은 영웅으로 선정된 분들 중에는 10년 넘게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어린이뮤지컬을 무료로 연출하거나 아픈 몸을 이끌고 폐종이컵을 모아 기부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부끄러울 정도다. 그분들이 진정한 영웅이다. 그 분들의 선행이 더 많이 알려지고, 시민들 사이에 이런 선행이 퍼져야 한다. 나는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내가 아닌 다른 공무원이었더라도 최근과 같은 상황을 만나면 나와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역무원 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첫 사회생활을 1984년 서울시공무원으로 시작해 딱 10년간 근무하다 1994년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생기면서 옮겼다. 이후 김포공항역, 반포역, 장승배기역 등을 다니며 22년째 근무하고 있다. 주로 7호선에서 대부분 보냈다. 항상 바삐 뛰어다녀 항상 양말이 구멍이 날 정도다. 그래도 직장이 있고 할일이 있다는 게 행복하다. 다만, 이제 정년까지 5년도 채 남지 않았는데 막상 다가올 시간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건강관리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체력은 젊은 친구들보다 자신 있다. 마음 같아선 더 오래 근무하고 싶다.

예전에 수상소감으로 여생을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 승객안전을 지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다. 항상 직원이나 승객들에게 관심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그것이 결국 안전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안전이라는 것이 거창하고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만, 절대로 혼자 힘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시민들이 함께할 때 가능하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2013년부터 숭실대입구역과 남성역 역장을 겸직하고 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까지 매일 양 역을 오가며 승객과 시설 안전을 책임진다. 특히, 숭실대입구역은 다른 역들에 비해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거리가 47.2m나 될 정도로 깊어 승객들이 이동에 불편을 느끼고 있고, 화재 같은 재난사고에 취약하다. 하루 평균 4만명의 승객이 찾는데 출구도 4개뿐이어서 항상 위급한 상황이 발생해 승객들이 다치지는 않을까 늘 긴장해야 한다. 또 대학교와 가까운 역 중 하나라 등교시간에는 지각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이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에 몰리면서 굉장히 복잡하다.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하철 안전을 위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7호선도 그렇고 다른 지하철들도 10~20년 이상 지나면서 모든 지하철역과 승강장, 기계설비가 노후했다. 무조건 새롭게 만들기보다는 필요한 부분을 점진적으로 고쳐나갔으면 한다. 숭실대입구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당부하고 싶다. 아침에도 지각할까봐 에스컬레이터에서 뛰어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조마조마하다. 아무리 안내방송으로 주의를 주지만 잘 안 된다. 지각할까봐 뛰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조심해서 이용해줬으면 좋겠다. 그래도 숭실대 학생들은 굉장히 착하다. 숭실대입구역에서 역장으로 3년 동안 있었지만 술 먹고 사고치거나 싸우는 걸 본적이 없다. 평소에 점심도 숭실대 교내식당에서 먹다보니깐 학생들과도 자주 본다.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서 예의도 바르다.

 

 

김영구 숭실대입구역 역장이 지난 23일 역에서 승강장 한편에 마련된 승객구호 장비함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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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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