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맛의 인문학)⑧햄버거-패티와 번으로 작성되는 새로운 묵시록에 대한 명상

입력 : 2016-03-30 오전 6:00:00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71억 이산화탄소톤으로, 세계 전체의 연간 배출량의 약 15%에 달한다. 몽골의 정복전쟁이 세계인을 공포로 몰아넣었다면, 현재 진행 중인 맥도날드식의 세계화는 인류와 지구를 극언하면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몽골의 전쟁과 달리 맥도날드의 햄버거는 달콤하고, 식탁의 고기는 대체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우리가 한 표를 의무적으로 행사하며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의 열등시민이 되었듯, 값싸고 맛있는 햄버거 한 개를 날렵하게 삼킬 때 지구를 망가뜨리는 열등 생명종이 되어간다.
 
2015년 말~2016년 초, 인기리에 방영된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1988은 다양한 함의를 갖겠지만 당장은 서울올림픽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극중에서 서울올림픽을 다뤘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의 1988은 그렇게 깔끔하고 애틋한 기억은 아니다. 1987년의 민주화투쟁이 죽 쑤어 개 준 것으로 판명 나며 1988년을 맞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의 사전각본에 의한 6·29선언, 대통령 직선제란 경기규칙에만 덜컥 합의한 소위 민주 야당, 나중에 차례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민주 야당의 지도자 김영삼과 김대중의 적나라한 권력욕, 김현희의 KAL기 폭파, 군사독재 정권의 합법적 연장 등을 뒤로 하고 맞은 새해는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불쾌감은 그러나 지금에서야 명확해진, 자크 랑시에르가 서구 국가를 분석하며 규정한 과두제적 법치국가의 도래를 전혀 짐작하지 못한 순진한 즉자적 반응에 불과했다. 이후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을 금권적이고 과두적인 법치국가의 전체주의를 예상했다면 새해의 소회는 불쾌함정도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에 우리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가 아니며, 우리의 민주주의가 증오의 대상이 되리라고 감이나 잡을 수 있었을까.
 
당시 미처 예상하지 못한 다른 거대한 변화로는 맥도날드를 들 수 있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19883월 맥도날드 1호점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문을 열었다. 맥도날드의 입지는 그 즈음 압구정 로데오라 불리던 젊은이의 명소 한가운데였다. 몇 년 뒤 초년병 기자시절에 맥도날드 1호점 근처를 돌아다니며 취재라는 걸 한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아마도 맥도날드 매장 안에 들어가서 햄버거를 먹었을 게다. 1호점이 2007년에 문을 닫았지만, 맥도날드의 성장세는 눈부셔서 조금 과장하면 교회만큼이나 많아졌다.
 
장정일의 명상
대학을 졸업할 무렵인가, 장정일의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사서 읽었다. 나보다 몇 살밖에 많지 않았던 이단아풍 젊은 시인의 거침없는 부르짖음은 유쾌했다. 외설 혹은 불경이란 수식어조차, 잉크 냄새 올라오는 갓 펼친 신문이나 아침 출근 길 공복에 쏟아 부은 뜨거운 맥카페처럼 반갑게 낯설었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햄버거를 명상한 결과물이 무엇인지는 독자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테고, 시집 이름과 같은 제목의 시의 결론은 미국식 간식이다. 장정일 또한 당시에는 이 미국식의 무시무시한 의미를 미처 짐작치 못하고 그저 감각적으로 사용하였을 법하다. “미국식 간식, 말하자면 맥도날드는 빅맥지수, 맥도날드화 등의 사회과학 용어로도 활용되며 세계화의 상징 그 자체가 된다. 세계화는 미국식 세계화이기 때문에 미국=세계=맥도날드이다.
 
서울올림픽이 열리고 10년 뒤 한국 사회는 이른 바 미국식 세계화와 직방으로 대면한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맥도날드화에 편입되어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저임금과 결합된 고용불안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공식적인 시점이 서울올림픽 10년 뒤라는 데에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만일 만들어지지 않는 게 좋았을 사회과학 용어를 선정한다면 맥도날드화는 목록의 가장 윗단을 차지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국민 대다수에게 그렇단 얘기고 반대로 재벌에게는 소망스런 단어였다. 짧지만 굵직한 흔적을 남긴 지난 수십 년의 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미국식은 금권에게 결정적으로 맛이 좋고 영양이 많은 것이었다.
 
햄버거는 맥도날드와 조금 다른 맥락에 위치한 사회적 현상이지만, 장정일이 이해한 대로 당연히 미국식 음식이다. 거기에는 맥도날드, 맥도날드화와 같지만 동시에 다른 양상의 세계화 과정이 전개된다.
 
타르타르 스테이크’, 함부르크, 햄버거
햄버거(hamburger)란 이름은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Hamburg)에서 유래하였다는 게 정설이다. 도시 이름 뒤에 ‘er’을 붙인 햄버거는 원래 함부르크에서 온 사람이나 물건을 뜻하는 독일어와 영어의 혼용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햄버거가 함부르크의 창안물은 아니다.
 
고기를 다지거나 갈아서 먹는 습속은 수천 년이 더 된 인류의 자연스런 음식문화에 속한다. 햄버거와 관련한 갈거나 다진 고기의 기원으로는 대체로 13세기 칭기즈 칸 시대가 지목된다.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정벌한 칭기즈 칸은 며칠씩 쉬지 않고 말을 달려야 하는 기마병들을 먹일 음식을 찾느라 고민하였다. 그리하여 먹고 남은 양고기 부스러기(말고기를 넓적하게 잘라서 사용했다는 이설도 있다)를 지금의 햄버거에 쓰는 패티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 말과 안장 사이에 넣고 이동하면, 말을 타고 다니는 동안 기승자의 체중이 눌러주는 효과로 고기가 부드러워져 익히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238년 쿠빌라이 칸이 모스크바를 점령하면서 러시아에 이 같은 몽골제국의 음식문화가 전해졌다. 러시아인들은 안장 밑에 고기를 넣는 대신 생고기를 갈아서 다진 양파와 날달걀을 넣고 양념해서 먹었는데 이것을 타르타르 스테이크라고 불렀다. 타르타르는 엄밀하게 구분하면 몽골족이 아니지만 유럽인에겐 악마같이 무시무시한 동쪽 초원의 오랑캐 정도의 의미로서 사용되었기에, ‘타르타르 스테이크타르타르는 몽골을 뜻한다.
 
러시아의 타르타르 스테이크17세기에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 전해졌다. 질 낮은 고기를 갈아서 향신료로 간을 하고 생으로 먹거나 익혀서 먹던 함부르크 스테이크는 선원들을 통해 신대륙 뉴욕으로 전파되었다. 1850년대에는 오랜 항해에도 먹을 수 있게 함부르크 스테이크를 만들 때 소금 간을 하거나 훈제로 만드는 등 일부 개선이 이루어진다.
 
햄버거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시기는 19세기말~20세기초이다. 효녀 심청의 고향을 두고 황주(북한) 예산 곡성 등이 서로 정통을 주장하듯, 햄버거의 미국 내 기원에 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1885년 미 위스콘신 주 세이무어(Seymour)에서 열린 박람회(Seymour Fair)에서 찰리 나그린(Charlie Nagreen)이란 15세 소년이 처음으로 햄버거를 팔았다는 것이다. 찰리는 당초 가판대를 세우고 미트볼을 판매할 계획이었으나, 박람회를 구경하면서 미트볼을 먹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착안해 미트볼을 납작하게 만들어 빵 사이에 끼워 팔았다. 이후 그는 햄버거 찰리(hamburger Charlie)’로 불리며 매년 박람회에서 햄버거를 팔았다고 한다. ‘찰리 설(說)이 그러나 수많은 다른 이설에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어 햄버거의 정확한 기원은 판정내리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햄버거가 사실 맥도날드에 의해 지금의 세계적인 햄버거로 부상하였다는 측면에서 기원논쟁은 큰 의의를 갖지 못한다. 햄버거는 그냥 햄버거가 아니라, 맥도날드의 햄버거로서 확고한 의미를 갖게 되고 음식문화로 뿌리를 내리게 된다.
 
정크푸드, 지구온난화
전 세계를 그물망으로 연결한 패스트푸드 체인으로 맥도날드와 그밖의 다른 미국 태생의 체인들은 햄버거와 햄버거에 따라붙는 코카콜라 등을 세계인의 음식으로 만드는 데에 몽골제국의 정복전쟁을 능가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제 햄버거는 과거 몽골인이 유럽인으로부터 공포의 대상이 되었듯, 세계인으로부터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햄버거가 세계인을 위협하고 있다. 인류가 햄버거를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햄버거는 인간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정크푸드라는 낙인을 받았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고기로 만든 패티, 전반적인 영양불균형 같은 문제는 어쩌면 덜 심각한 문제이다. 햄버거용 패티를 공급하기 위해 전 세계 축산업계는 맥도날드화한방식으로 고기를 생산하고 있다. 날로 늘어나는 수요에 맞추기 위해 각국의 축산업계는 가축에 30종 가량의 항생제를 쓰는데, 2014년 뉴욕타임즈가 보도한 미 식품의약청(FDA)의 내부문서에 따르면 그중 18개가 사람에게도 효력을 발휘한다. 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재앙은 생각보다 심각해 2050년에 세계 전역에서 10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햄버거용 번 또한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방부제와 농약에 노출된 밀로 만든 번 사이에 항생제를 듬뿍 맞은 소고기를 끼워 넣은 햄버거를 먹은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또 다른 문제는 패스트푸드업계의 원재료 납품을 포함하여 인류에게 육류를 공급하기 위해 세계 축산업계가 어마어마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은 71억 이산화탄소톤으로, 세계 전체의 연간 배출량의 약 15%에 달한다.
 
몽골의 정복전쟁이 세계인을 공포로 몰아넣었다면, 현재 진행 중인 맥도날드식의 세계화는 인류와 지구를 극언하면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몽골의 전쟁과 달리 맥도날드의 햄버거는 달콤하고, 식탁의 고기는 대체로 우리를 즐겁게 한다. 우리가 숙의 없이 한 표를 기계적으로 행사하며 전체주의적 민주주의의 열등시민이 되었듯, 값싸고 맛있는 햄버거 한 개를 날렵하게 삼킬 때 지구를 망가뜨리는 열등 생명종이 되어간다.
 
이제 60살을 바라보는 장정일의 시집을 다시 읽어야 할 시점이지 싶다. 그것도 정독해야 한다. (참고 네이버 지식백과)
 
삽화/김희헌
 
안치용 토마토CSR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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