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성원기자] 황영기
KB금융(105560) 회장이 23일 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야인(野人)'으로 돌아갔다. 금융당국이 '직무정지 상당'의 중징계를 확정한 지 2주만에 내린 결론이다.
황 회장은 지난 보름간 금융당국은 물론 KB금융 내부에서도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강한 승부근성과 꼿꼿한 성격 탓에 '검투사'로 불리며 이름을 날렸지만, 우리은행 파생상품 투자손실의 책임을 지고 사실상 금융권에서 퇴출됐다.
◇ "무거운 책임감 느낀다"..중징계 불만 드러내기도
황 회장은 이날 사의 발표문에서 "금융위원회의 징계조치가 KB금융 회장직을 유지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의 문제 때문에 조직의 성장과 발전이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또 "과거 몸담았던 우리은행에서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한 손실이 발생한 데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우리은행과 KB금융그룹 임직원 여러분들께 송구스런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금융당국의 징계에 대한 불만의 뜻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성장·발전의 기반인 금융시장에서 저에 대한 징계가 금융인들을 위축시키거나 금융시장의 발전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영상 판단이 손실로 이어진 것을 두고 금융당국이 사후에 책임을 묻는다면, 금융권 인사들의 투자의욕이 저하되고 결국 몸을 사리게 된다는 이른바 '황영기 신드롬'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황 회장은 오는 29일 KB금융 출범 1주년 기념식을 끝으로 공식석상에서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KB금융 관계자는 "오는 25일 사외이사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의 공백은 당분간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메울 예정이다. KB금융 이사회 역시 '강정원 체제'를 공고할 것으로 보인다.
◇ 황영기 '2라운드' 시작되나..국감출석에 소송 가능성도
그러나 '황영기 사태'가 이대로 마무리될 가능성은 낮다. 당장 다음달 12~14일 예정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황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된 탓이다.
그간 침묵을 지켰던 황 회장이 금융당국의 중징계에 대한 또 다른 입장을 밝힐 공산이 크다.
황 회장의 발언에 따라 이 문제가 정치권에서 재점화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정무위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황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무위 간사를 맡고 있는 민주당 신학용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들 사이에 황 회장을 증인으로 부르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현재로선 그가 증인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황 회장이 국회에 나와 자신의 입장을 두둔할 폭탄성 발언을 쏟아낼 공산도 크다.일각에서는 '자연인' 황영기가 금융당국과 법정공방을 벌일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황 회장은 현재 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들을 법률대리인으로 두고 있다. 이들은 황 회장에 대한 중징계가 최종 확정된 지난 9일 금융위 정례회의에 참석해 곧바로 황 회장을 적극적으로 변호한 바 있다.
황 회장측은 일관되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황 회장이 명예회복을 위한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커 보인다. KB금융 회장이라는 옷을 벗어던진 만큼 금융당국에 보다 적극적으로 맞설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예금보험공사는 오는 25일 오전 임시 예금보험위원회를 열고 우리은행 관련 징계안건을 상정, 황회장 징계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뉴스토마토 박성원 기자 wan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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