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성재용기자] 회사채 시장이 보수적인데다 건설업을 경계하다보니 재무·금융파트 직원들이 현금 확보 방안을 마련하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습니다. 차환(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상환하기 위해 새 채권을 발행) 발행이 어렵게 되니 현금상환이 나은지, 은행대출이 나은지 비교도 해보고, 자산이나 보유 지분 매각 등도 시뮬레이션 하느라 골치가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네요." (A건설 관계자)
건설업계에 대한 투자자들의 냉랭한 반응이 계속되면서 '돈맥경화' 우려가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회사채 만기는 돌아오고 있지만, 차환발행 여건이 녹록치 않은데다 다른 방안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더라도 결국은 유동성 저해를 야기하다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건설 회사채(사모 포함) 발행 규모는 2011년 6조36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매년 줄어들면서 지난해 1조5000억원까지 급감했다. 특히, 작년 11월
현대산업(012630)개발이 1000억원 규모로 발행한 이후에는 건설 회사채가 아예 시장에서 종적을 감췄다.
S증권 관계자는 "삼성ENG가 2013년에 이어 지난해 또 다시 1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진 이후 투자대상 업종에서 '건설'을 빼버린 기관투자자들이 많다"며 "건설업이나 조선업 등 수주산업 쪽 시장은 아직도 얼어있어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회사채 발행이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수주산업 회계투명화 방안을 마련하면서 발행 여건이 더욱 악화됐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수주산업 회계투명화 방안이 마련되면서 건설업계가 증권신고서에 매출 비중 5% 이상의 사업에 대해 추가정보 기재를 요구받았다"며 "추가 정보 노출을 우려한 건설업계가 회사채 발행을 미루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건설사들은 지난해 번 돈 대부분을 차입금이나 회사채 상환에 사용했다. 작년 11월 이후 ▲
삼성물산(000830) ▲포스코건설 ▲
대우건설(047040) ▲GS건설 ▲롯데건설 ▲SK건설 ▲한화건설 등이 총 1조5000억에 달하는 회사채 만기를 맞았지만, 모두 차환하는 대신, 자체 보유현금으로 상환했다. 이 중 일부는 차환을 추진했으나, 투자자 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자 발행 계획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유현금이 어느 정도 갖춰진 우량 건설사의 경우 현금 차환이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한 건설사들은 재원 마련을 위해 본사 사옥이나 사업 부문 등을 매각하고 있다. 기업어음(CP)이나 전자단기사채 등 다른 자금조달방안 찾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금 상환뿐만 아니라 보유 자산을 매각하거나 대출을 이용하는 경우 유동성 유출과 재무안 정성이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더군다나 최근 해외사업 부진과 국내 공공공사 채산성 저하 등으로 가뜩이나 유동성 우려가 있는 건설업계는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주요 24개 건설사들의 유동비율은 120.3%로, 전년에 비해 12%p 줄어들었다. 절반이 넘는 15개사가 감소세를 보였으며, 10대 건설사로 범위를 축소(합병 이슈가 있는 삼성물산은 제외)하면 포스코건설과 현대산업개발을 제외하고는 7개사 모두 하락세다.
유동비율은 기업이 보유하는 지급능력 또는 그 신용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비율이 높을수록 그만큼 기업의 재무유동성은 크다. 200% 이상으로 유지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한신평 관계자는 "만기가 된 회사채를 보유 현금으로 상환하면 빚을 줄이는 효과는 있지만, 유사시에 쓸 수 있는 '실탄'도 그만큼 줄어 유동성 대응능력이 떨어진다"고 경고했다.
시장에서 외면 받고 있는 건설 회사채가 연내 또 다시 만기물량이 적잖이 도래하면서 유동성에 위기가 우려되고 있다. 그래픽/최원식 디자이너.
성재용 기자 jay111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