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현정기자] 거대 자본력을 갖춘 대형증권사들이 헤지펀드 시장에 뛰어든다. 운용자격을 갖추고도 제도에 묶인 탓에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지속됐으나 최근 정부가 조만간 증권사의 인하우스 헤지펀드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로써 기존 헤지펀드 운용사들이 주도하던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금융감독원 자산운용감독실 관계자는 "지난주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회원사 의견수렴을 거쳤고 금융위원회와의 협의 과정 단계에 있다"며 "최종판단은 금융위가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기는 이르면 이달 말이 될 전망이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증권사가 자기자본과 고객자금을 함께 운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 문제 등이 중점적으로 검토됐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증권사 인하우스 헤지펀드 내 준법감시인에 준하는 인력이나 조직을 따로 두게 할 것으로 알려졌다. 별도 평가관리조직을 꾸리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금융위가 앞서 증권사의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 운용업 허용을 공언한 만큼 시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큰 걸림돌 없이 원만히 진행 중으로 기술적 부분에 대한 협의만 남았다"며 "늦어도 내달 초엔 가이드라인이 확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찌감치 헤지펀드 진출을 공식 선언한 NH투자증권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확정되면 곧바로 헤지펀드를 설정하고 본격적인 운용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최근 여의도 농협재단 빌딩에 헤지펀드 트레이딩 센터를 개점하며 정보교류차단(차이니즈월)에 나서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도 금융당국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이다.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회사 프랍트레이딩(자기자본투자)팀의 우수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이벤트 드리븐, 롱숏 등 멀티전략을 활용할 계획"이라며 "이달 말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이 오픈될 것으로 보고 대응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은 "아직 가이드라인이 확정된 것이 아니어서 시스템과 조직구성 등 구체적인 내부방침을 정한 것은 없다"면서도 "다만 가야할 길이라고 보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진출 의지는 강하지만 규모의 경제에서 대형사에 밀릴 것으로 판단한다"며 "모범 차이니즈월 수준이 예상보다 높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주 열린 금감원의 관련 설명회에 참석했다는 또 다른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이 요구하는 차이니즈월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비용이 최소 1000억원이 들 전망"이라며 "원점에서 다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헤지펀드 운용업 진출은 증권사에 큰 기회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헤지펀드 규제 완화로 헤지펀드는 갈수록 보편화할 것"이라며 "투자자산군의 범위가 넓고 전통적인 투자상품 대비 수익성이 높은 만큼 증권사들이 적극적으로 자금유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여러 공급자에 의해 다양한 전략을 담은 다양한 상품이 출시되면 수요는 자연히 늘어난다"며 최근 국민연금을 비롯한 대형연기금의 헤지펀드 투자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점이라고 말했다.
기존 헤지펀드 운용업에 큰 압박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재칠 박사는 "현재 한국형 헤지펀드는 이미 경쟁력 있는 운용인력과 전략을 확보한 상태에서 자연스러운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대형사라고 해도 이제 걸음마인 만큼 초기 과감한 투자는 부담스러울 것이기 때문에 기존 경쟁에 심각한 압박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NH투자증권 시작으로 자본력 갖춘 대형증권사 헤지펀드 출범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로써 기존 헤지펀드 운용사들이 주도하던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사진/뉴스1
차현정 기자 ckck@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