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건설노동자 임금이나 받게 해 다오!

입력 : 2016-04-21 오전 8:00:00
[뉴스토마토 박관종 건설부장] #1. 새벽녘 퉁퉁 부은 얼굴을 투박한 손바닥으로 쓱쓱 비벼 정신을 챙긴다. 허름한 작업복에 대충 모자하나 꺾어 쓰고 거리로 나선다. 매서운 겨울을 겨우 이겨냈나 싶었는데 동틀 무렵 날씨는 아직 차갑다. 닳아빠진 옷깃 속으로 목을 바짝 움츠린 채 활활 타는 페인트 통에 장작개비 하나를 툭 던져 넣는다. 혹시 오늘도 일을 얻지 못할까 걱정이다. 요 며칠 새 30대 젊은이들 몇몇이 오기 시작 하더니 그나마 좋은 일자리를 죄 차지해 갔다. 40대 일꾼들까지 다 불려 나가면 올해 51살인 나는 그때부터 눈치 싸움이다. 아직 일할 힘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움츠렸던 목을 꺼내고, 가슴을 부풀려 보인다. 오늘도 선택받지 못하면 일주일을 집에 돈 한 푼 못 가져다주게 된다.

 

#2.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1년째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했다. 지난해 30살을 넘기면서 직업 없이 서울서 살길이 더 막막해 졌다. 6개월 전 일단 밀린 공과금이나 해결해 볼 요량으로 노량진 학원에서 사귄 또래 몇몇과 집근처 인력사무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곳에 나오는 아저씨들보다는 나이가 젊다보니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비교적 쉽게 일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다 석 달 전 작은 하청업체 미장 보조 일을 얻게 돼 지방 현장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두 달째 임금을 못 받고 있다.

 

수천억원의 돈이 몰리고, 시행한번 제대로 하면 수백억원 수익은 우습다는 대한민국 건설판 한 구석의 이야기다. 번듯한 건설회사 정규직 이야기가 아닌 것은 다 알 것이다. 본의 아니게 일찍 정년을 맞은 50~60대들이 몇만원 삶의 희망을 구하러 모이는 곳, 직업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모이는 그 판의 이야기다.

 

누구나 알고 있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하지 말길 바란다.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만큼 문제가 심각한데도 누구나 다 알다시피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오히려 임금을 못 받는 사람들은 더 늘었고, 그래서 그나마 있던 젊은이들은 시장을 떠났다. 50대는 눈치를 보며 기웃거려도 나이 들었다고 홀대받기 일쑤다. 그러니 이런 말은 하고 또 해도 모자란 상황이라고 우기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지난해 기준 182만3000여명에 달한다. 국민들의 먹거리 터전인 셈인데 이들에게 밀린 임금이 무려 2275억원이나 된단다. 떠돌이 하도급업자가 임금을 주지 않고 야반도주 했거나 부도가 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때는 법 절차를 진행한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릴 뿐더러 돈을 받아내기도 어렵다. 한마디로 속수무책인 셈이다. 그래서 사후약방문이 아닌 예방이 중요하단 지적이 많았다.

 

이런 이유에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사대금 미지급 행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방안으로 하도급직불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공기관 공사를 진행 할 때 발주자가 하도급자에게 공사 대금을 직접 지급하는 제도다.

 

하지만 건설업계가 즉각 발끈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원사업자가 하도급업체를 관리감독 하기 어려워져 공사 품질이 현저히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대금을 직접 받은 하도급자가 노무자, 기계업자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잠적하거나 고의 부도를 내버리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란다.

 

영세 하도급 업자들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정부의 취지는 공감한다. 단순히 직불제를 도입한다고 해 현장의 임금채불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다는 업계의 주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서러운 노동자들은 이런 큰물의 주도권 싸움에는 관심이 없다. 일한 만큼 받았어야 할 밀린 임금으로 가족들 입에 풀칠하는 게 먼저다. 논란과 대립일랑 금세 접고, 백신을 만들어 내놓을 때다.

 
박관종 건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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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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