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로맨스 영화로 이름을 날린 ‘건축학개론’은 ‘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지긋지긋하고 구질구질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지지만 삶이 담겨있는, 그렇기에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공간인 ‘집’에 관해 이야기한다. ‘건축학개론’에서 이야기하는 집은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피하고 그 속에 들어가 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라는 집의 사전적 정의를 넘어선다.
우리가 먹고 자고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추억이 담긴 물건을 하나씩 들여놓는 집엔 ‘삶’이 가득 들어찰 수밖에 없다. 이는 집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람이 모여 의미를 부여하고 생활하는 공간이라면 그곳은 삶과 추억, 의미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집’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공간’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볼 수도 있을 테다. 건축학개론은 사람이 사는 곳에 너무도 많은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사진/ 뉴스타파 목격자들 8회 공간학개론 방송화면 캡처
그래서일까. 지난 6일 예술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과 건물주 싸이 간의 명도소송이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몹시도 반가웠다. 영화가 개봉된지 2년 반이 지난 2014년 여름, 건축학개론의 촬영지였던 한남동 예술카페 테이크아웃 드로잉이 건물주인 가수 싸이와 명도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기사가 보도됐다. 그로부터 1년 반 만에 합의에 이른 것이다.
테이크아웃 드로잉은 예술가들이 외부 지원 없이 독자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작업실과 전시실을 대여해줬으며, 손님들이 지불한 음료값의 일부를 예술가들의 활동 지원비로 나눠줬다. 예술가들에겐 꿈을 펼치는 공간이었고, 손님들에겐 예술과 소통하는 공간이었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건물주 측의 강제 집행으로 인한 폭력사태까지 겪은 끝에 오는 8월말까지 영업하는 것으로 최종 합의했다.
싸이는 그간 예술가와 주민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것에 사과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강제 철거와 그로인한 비자발적 이주를 경험하는 사회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던 테이크아웃드로잉이 사과를 받고 치유기간까지 가질 수 있게 됐다. 이 소식은 희망적이면서도 더 많은 ‘현대의 비자발적 유목민들’을 상기시킨다.
경리단길, 홍대, 서촌, 상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들이다. 서울시가 지난해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리단길의 10년 새 건물 임대료는 최대 6.5배, 원룸 월세는 3배까지 올랐다. 홍대 인근 상가 권리금은 5년 사이 5~10배, 서촌 한옥의 3.3㎡당 매매가는 5년 사이 1700만원에서 2500만~3000만원으로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대료 폭등으로 기존 상인이 떠난 자리는 대형 프렌차이즈 업체와 고급 레스토랑이 채웠다.
중·상류층 사람들을 유입시켜 낙후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어 준다는 점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장점으로 꼽힌다.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와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때 따뜻한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 우아한 고급 레스토랑은 누구를 위한 활기일까. 사람 사는 공간에서 삶이 사라져간다. 삶이 떠난 자리에 돈이 들어찬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