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한국은행에 ‘발권력 카드’를 꺼내 국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 자금으로 써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 역시 구조조정의 최종 조율자로서 부실 기업지원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추가적인 자본 투입만 강조하면서 한은에 구조조정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4일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에 대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자본확충 방안을 논의하는 관계기관 테스크포스(TF)가 출범할 예정이다. 이 회의에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관계자가 참석한다.
정부는 국책은행(산은, 수은)의 자본확충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으며, 이미 자본확충을 위한 한국은행의 역할론을 강조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경제부총리까지 "한국판 양적완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최근 언론사 데스크와의 간담회에서 "중앙은행이 적극적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며 한은이 국책은행의 자본확충에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자본확충 필요성에 대한 원론적인 언급에서 급진적 한 것이다.
금융위는 필요하면 산은법을 개정해 한은이 출자할 수 있도록 할 계획도 거론했다. 임 위원장이 "국책은행 자본확충 규모, 방식 등에 대해서는 기재부, 한은 등 관계기관과 내주부터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지만, 사실상 정부가 원하는 방안이 한은 출자라는 점을 내비친 것이다.
금융당국이 말하는 국책은행 자본 확충에 나서는 이유는 앞으로 진행하는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당장 국책은행의 건전성에 문제가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에 대비해 자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취약업종에 대한 대출을 늘려왔다. 2009년 1.9%에 불과했던 한계 대기업 대출 비중은 2014년 12.4%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시각에 당사자인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마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산은은 경우 조선 해운 가운데 해운 업종에 국한했지만 산은의 수익만으로 충분히 감당할 여력이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현재 구조조정에 나설 만큼 자기자본(BIS)비율이 안전한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산은 고위 관계자는 "길게는 4년에서 5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의 경우 BIS비율에 반영되기까지는 수 년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기업 부실 책임에 대해서는 "산은이 대우조선 사태 등의 구조조정 당사자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반성도 많이 하고 있고 시스템도 많이 고친 상태"라며 "전적으로 산은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책은행의 역할론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되지만 금융권에서는 기업 구조조정의 책임을 떠앉고 있는 산은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다. 금융당국마저 국책은행의 역할론에 힘을 실어주자 다시 고개가 뻗뻗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은의 담당 기관인 금융위원회까지 산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분위기다. 앞서 감사원은 최근 2년간 5조원이 넘는 적자를 낸 대우조선해양을 산은이 방치해온 것에 대한 감사를 진행해 마무리 단계에 있다.
금융위도 산은의 책임론을 강조했지만 원칙론에 불과한 수위다.
임 위원장은 "그동안 조선 업황이 안 좋았고, 경영관리상의 모럴해저드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산은이 심기일전해서 대우조선을 관리해 나가고 전문성 있는 경영진을 선임, 노사협력을 해 정상화를 추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또 다시 국책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을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국책은행에 낙하산을 앉히면서 그동안 부실을 더욱 키웠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주요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책한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과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대학 동문이며, 이동걸 현 산업은행 회장은 박 대통령의 선거캠프 출신이다.
다른 국책은행 관계자는 "기재부의 소관에 있는 수출입은행도 최근에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내놓고 정부로부터 겨우 자본확충 승인을 받았다"며 "금융위도 산은을 무조건 감싸기만 하기 전에 그에 맞는 명백한 책임 여부를 먼저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임종룡 금융위원장. 사진/금융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