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정부와 여당이 이른바 기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당사자인 산업은행은 아직 여력이 충분하다며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빌어 자본을 늘리는 것은 관련 법 개정이 선결돼야 하는데, 벌써부터 이슈화 되면서 산은이 지금 당장 정부 수혈을 받아야 하는 부실기관이라는 오명만 쓰고 있다는 우려가 내부에서 나온다.
◇산업은행 여의도 본점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대현 산업은행 정책기획부문 부행장은 지난 27일 정책 기획 부문 업무설명회를 갖고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자본 확충에는 긍정적이지만, 어디까지나 '예방적 차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은에 따르면 한은이 산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으로는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을 사는 시장성 조달 ▲ 산은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등 후순위채 인수 ▲ 자본금 확충 등 세 가지가 꼽힌다.
이 부행장은 "한은이 산은의 신종자본증권 등 후순위채를 인수하거나 아예 자본금을 주는 방안이 자본확충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산금채는 대부분 시장에서 소화되고 있으며 자금조달에는 도움이 되지만 자기자본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조선업 등 다른 산업의 구조조정이 어떻게 진행될지 방향이 정해져야 자본확충 규모와 시기가 결정될 것이라며, 조건부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아직까지는 자본 여력이 충분하다는게 산은의 설명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은 14.28%다. 이는 시중은행 평균치(14.85%)와 비슷한 수준이다. BIS비율은 자기자본을 위험가중자산으로 나눈 비율로 은행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척도다.
산은이 한은의 신종자본증권 인수나 직접 출자를 통한 방식을 선호한다고 밝혔으나 모두 현행법 상 불가능하다.
한은법 제76조에 따르면 중앙은행은 국채와 정부가 보증한 채권에 한해서만 직접 인수할 수 있다. 20대 국회에서 한은법 개정이 이뤄져야 정부 보증이 없는 산금채를 한은이 인수할 수 있는 것이다.
산은 관계자는 "이미 상당수 부실기업은 손실이 반영돼 있는 만큼 현재로선 구조조정 여파는 산은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예방차원에서 자본확충이 필요하다는 원칙적인 얘기"라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자본을 늘려준다는데 마다할 기관이 어디있겠느냐"면서도 "하지만 한은 법을 개정하려면 여소야대 국면의 국회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벌써부터 지금 당장 수혈이 필요한 기관인것처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상대적으로 부실이 심각한 수출입은행의 자본 확충이 요원한 상황이라 산은의 자본확충 문제를 공론화 시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산은과 함께 조선·해운사의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은 산은보다 자본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수출입은행의 BIS 비율은 작년 말 기준 10.0%에서 1분기 말 9.8%(잠정치)로 내려앉았다. BIS비율을 10% 초반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최대 5조원의 금액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은은 기획재정부가 주무부처지만 산은은 금융위원회가 담당한다"며 "산은이 미운털이 박힌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은 새누리당의 총선 공약인 '한국형 양적완화'로부터 시작됐다.
양적완화는 전통적 정책수단인 금리조정을 통한 간접적 통화량 관리와는 달리 중앙은행이 채권 매입을 통해 시장에 직접 돈을 푸는 것을 말한다.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발동해 채권을 매입, 시장에 돈이 돌게 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한국형 양적완화는 중앙은행(한국은행)이 직접 산업은행의 산금채을 인수해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토록 하는 것이며, 박근혜 대통령도 이날 "구조조정을 집도하는 국책 은행의 지원 여력을 선제적으로 확충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