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와 이대호(시애틀 매리너스)의 방망이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이제 막 부상에서 돌아온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게까지 옮겨붙었다. 이름 끝에 모두 '호'를 쓰는 '쓰리(Three)호'는 이전보다 더 강력한 홈런을 쏘아 올리며 빅리그 내 동양인 타자들의 이미지를 바꾸는 것은 물론 한국인 타자의 새로운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강정호는 8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의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해 3타수 무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7일이 백미였다. 4타수 2안타(2홈런) 3타점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4-2 승리를 책임졌다. 지난해 9월 무릎 부상을 당한 뒤 이날 무려 232일이 지나고 돌아왔지만, 공백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적응 기간이 필요 없다는 듯 화끈한 방망이 솜씨는 여전했다.
강정호는 정규 시즌 162경기 가운데 28경기에 결장한 뒤 29번째 경기 만에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이번 홈런 두 방으로 올 시즌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지난해 타율 2할 8푼 7리 15홈런 58타점을 기록했던 강정호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 새내기로 합류한 박병호, 이대호의 '빅리그 1년 선배'답게 자기 실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7일 강정호가 펄펄 날았지만, 박병호와 이대호의 올 시즌 전체적인 활약도 기대 이상이다. 박병호는 8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 나서 첫 타석 사구를 기록한 뒤 교체됐으나 7일 멀티히트를 날리며 타율을 2할 6푼 8리(82타수 22안타)까지 끌어올렸다. 적응 기간이 필요할 거라던 애초 예상과 달리 8일 현재 7홈런 12타점을 기록하며 팀 내 홈런, 장타율 1위, 타점 2위를 달리고 있다. 빅리그 현실을 더 배워야 할 처지가 아니라 팀을 선도하며 우뚝 섰다.
이대호도 제한된 출전 기회 속에서 국내와 일본에서 갈고 닦은 타격 능력을 뽐내고 있다. 이대호는 연봉만 800만달러(약 92억원)를 받는 아담 린드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지만 15경기에 나서 타율 2할 8푼 1리(32타수 9안타) 4홈런 6타점을 올렸다. 지난 5일 오클랜드전에선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꾸준히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며 '한방 능력'을 과시했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 타자는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정도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지난해 강정호가 추가됐고 올해 박병호, 이대호까지 새롭게 가세한 형국이다. 이들은 미국 무대에서도 변함없는 실력으로 어필하고 있다. 벌써 빅리그 투수들을 맞아 합계 13개의 공을 담장 밖으로 보내버렸다. 아직 시즌 초반이란 걸 생각할 때 주목할 만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셋 모두 충분한 기회를 보장받는다고 했을 때 모두 올해 두 자릿수 홈런이 기대된다.
그간 빅리그 내에서 동양인 타자의 이미지는 '거포'보다는 교타자나 중거리 타자에 가까웠다. 최희섭, 마쓰이 히데키, 이구치 다다히토, 조지마 겐지, 추신수 등 한 방 능력을 보유한 경우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비율을 고려하면 적은 수치였다. 하지만 올해 한국인 타자 '쓰리호'는 메이저리그 내 동양인 타자를 '소총수'로 보는 인식을 장타력 하나로 뒤바꾸고 있는 중이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강정호, 박병호, 이대호(왼쪽부터). 사진/로이터·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