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배우 김명민 "배우는 무당이다"

입력 : 2016-06-15 오후 1:55:55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치매에 걸린 경찰 출신 할아버지를 모시고 산다. 아버지는 술과 도박에 미치다 못해 사형수가 됐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품고 경찰이 돼 활약하지만, 때때로 폭력을 일삼는다. 그런 중 동료의 고발로 옷을 벗게 된다. 직업을 잃은 그는 한 변호사의 제안으로 돈을 쫓는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 된다. 그리고 누명을 썼다는 사형수로부터 편지를 받게 되고 재벌권력과 정면승부를 하게 된다.
 
영화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에서 배우 김명민이 맡은 인물 필재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병원 의사였다가 간성혼수로 목숨을 잃은 '하얀거탑', 제자에게 "똥덩어리"라고 말하는 지휘자였던 '베토벤 바이러스', 루게릭병에 걸렸던 '내 사랑 내 곁에'에 비하면 사연이 다소 약한 편인 캐릭터다.
 
매 작품마다 사연 있는 캐릭터로 분해 열연해온 김명민은 이번 작품에서는 비교적 어깨에 힘을 빼고 가벼운 스텝을 밟는다. 그러면서도 진중하게 극을 이끌어간다. 관객 만날 채비를 마친 김명민을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캐릭터의 디테일을 만들어내는 배우로서 최고로 꼽히는 그의 연기철학을 들어봤다.
 
김명민. 사진/뉴시스

"캐릭터의 전과 후를 써라"
 
경찰 출신 변호사 사무장인 필재는 경찰들에게 봉투를 주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수백만원이 들어있는 봉투를 건네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부탁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자신을 고발한 양형사(박혁권 분)에 대한 복수다. 워낙 처절하게 살아온 탓에 인간에 대한 애정보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사람을 대한다. 김명민은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었다.
 
"필재는 많은 걸 준비하지 않았다. 다른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역사와 미래를 썼다. 이 인물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의 전과정을 다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사무장의 세계도 공부하려고 했는데, 명목상 직업이고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필재가 왜 이런 삶을 살며, 속물근성을 갖게 되고 '은혜는 잊어도 원수는 갚아야죠'라는 대사를 쳐야 하는지에 집중했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쫄지 않는 환경을 머릿 속으로 그렸다. 그러면서 진짜 필재가 되려고 노력했다."
 
김명민 스틸컷. 사진/NEW

"배우는 무당이다"
 
'하얀거탑' 마지막회에서 간성혼수에 걸린 장준혁을 연기할 때 신문을 거꾸로 들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한 손은 신문을 집고 있는 모션만 취했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그 장면은 수 없이 회자됐다. 그렇게까지 연기하도록 영감을 준 한 일본드라마가 있었다고 한다.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치매 환자를 연기하는 분이었는데, 누군가에게 이끌려서 일어나는 장면에서 물이 떨어지더라. 오줌인 건데, 정말 스치듯이 지나간다. 그 부분은 배우가 설정한 것이었다. 내가 봤을 때 그게 배우가 해야될 몫이다. 그렇게 학교에서 배웠다. 1시간 전에 현장에 도착해 그 인물이 되가는 과정을 열심히 거친다. 그냥 잘 먹고 잘 살다가 촬영하는 것과 치열한 분석 후에 촬영하는 것에는 극과 극의 차이가 있다. 알고 연기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다르다."
 
연기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놓은 그는 배우는 '무당'이라고 정의했다. 일종의 접신을 해서 그 사람이 돼야만 한다는 의미다.
 
"배우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배우의 기원은 무당으로 여겨진다. 신내림을 받고 접신을 해서 다른 사람이 되는 거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는 못하지 않나. 그래도 접신에 가깝도록 노력은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모방을 하지 않으면 창조가 되지 않는다. 제일 싫은 건 김명민이 연기하는 거다. 김명민이 아니라 캐릭터로만 비춰지고 싶다."
 
김명민. 사진/뉴시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쓰이고 싶다"
 
아주 처절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가, 코믹 연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가볍다가도 진중한 모습으로 돌아서기도 한다.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연기력에는 성역이 없어보인다. 김명민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연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작품이 재밌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내가 안해도 그만인 작품은 안하려고 한다. 적어도 나를 서너가지 이상에서 쓸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한다. 능력 있는 감독이 나를 통해 성장하는 것도 굉장히 뜻깊을 수 있다. 영화의 경우에는 손익분기점을 넘겨야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건 내 역할이 아니다. 나를 보고 투자한 사람들만 만족시키면 된다. 스태프들과 파이팅하면서 남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싶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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