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천우희를 처음 만난 것은 천우희가 2014년 4월 영화 '한공주' 홍보차 인터뷰에 나섰을 때다. '한공주'에서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봉변을 당한 소녀를 연기한 뒤 2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당시 천우희는 예민하고 날카로웠다.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신경이 곤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이후 그 해 11월 영화 '카트'와 관련해서 또 한 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공주'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예민함은 유지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신중한 그는 주로 무표정에 가까웠다.
그런 천우희가 그 해 12월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눈물 범벅이 된 채 "이 상은 앞으로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겠다"며 "좋은 연기 보여주는 노력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약 1년 4개월이 지나 최근 신작 '해어화'에 출연한 천우희를 다시 만났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확 달라져있었다. 이제는 꽃처럼 활짝 핀 모습이다. 환한 미소에다 목소리 톤도 다소 높아져 있었다. 웃는 횟수도 훨씬 더 늘어났다. 자신감, 행복, 사랑이라는 단어가 얼굴에 가득 담겨 있었다.
천우희. 사진/나무엑터스
"제가 예뻐진 이유는요."
천우희의 미모는 '해어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연기한 연희는 기생 출신으로, 훌륭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어 천재 작곡가 윤우(유연석 분)로부터 가수 제안을 받는 인물이다. 윤우의 여자친구인 소율(한효주 분)과는 '절친'이다. 늘 맨 얼굴로 스크린 앞에 나섰던 천우희는 이번 작품에서는 진한 화장을 하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채 노래를 부른다. 처음으로 키스도 한다. 아무래도 이전 작품에 비해 예쁘게 나오는 장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스크린에서도, 또 실제로도 미모에 물이 오른 이유가 궁금해 대뜸 "이렇게 예뻐진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조심스런 성격을 지닌 천우희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리고 카메라 마사지도 있을 것이고, 자주 보다 보니까 낯익어져서 좋게 봐주시는 것도 있고요. 어색했던 것들이 자연스러워졌고, 헤어나 메이크업도 저랑 잘 맞는 거 같아요. 대체로 전보다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예뻐진 건 본인도 인정하는 건가"라고 되물으니, '짖굿다'는 표정으로 미소만 짓는다. 상을 받은 이후 확실히 이전보다 여유와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천우희는 오히려 상을 받은 뒤 혼란스러운 시간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상을 받아서 기뻤던 마음은 그 날과 함께 잊어버렸어요. 내적으로는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는데, 오히려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어서 힘들었어요. 저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지고 더 많은 요구가 생겼어요. 이전에는 '내 작품은 내가 해야지'였는데, 주위에서 원하는 것들이 많아졌어요. 그래도 기대에 부응하기보다 덤덤하고 묵묵하게 가려고 했는데, 쉽지만은 않더라고요. 1년 동안 많이 고민했어요. 나의 요구와 주위의 요구가 충돌하면서 신경을 많이썼어요. 결국에는 주위의 요구만 받다간 '제 자신이 사라질 것' 같더라고요. 결국 온전히 '나답게 살자'고 마음 먹었고, 다시 재정비한 상태에요. 그러다보니까 얼굴도 평온을 찾은 거 같아요."
천우희. 사진/뉴스1
"'해어화', 나의 다른 모습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해어화'는 천우희가 청룡영화상을 받고 처음으로 선택한 영화다. 왜 그가 '해어화'를 택했는지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작품에서든 매우 깊은 감정의 진폭을 표현해온 그는 여전히 내밀한 감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캐릭터에 화사한 향기도 담는다. 기존과 달리 화장기가 진하고 눈물도 흘리지 않는 캐릭터이지만 천우희는 여기에 진정성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달랐다. 천우희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만해도 선뜻 작품을 선택하긴 어려웠다고 밝혔다.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망설임 없이 하긴 어려웠어요. 주위에서 추천을 많이 했어요. 전 항상 깊거나 강렬하거나 그랬잖아요. 주위에서는 좀 산뜻하게 바뀌길 원했던 거 같아요. 그 부분에 동의했어요. 저 역시도 저의 다른 모습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그리고 노래에 한 번 도전하고 싶었어요."
과감한 도전에 나섬과 동시에 작품은 숙제로 다가왔다. 평소 노래를 즐겨 부르던 그였고, 노래에 자신도 있었다. '한공주'에서도 짧게나마 자신의 노래 실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극중에서 부른 여러 가지 노래는 음원으로 다운받아 듣고 싶을 정도로 훌륭하다. 기계로 만지는 작업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노래만큼은 자신 있었다는 천우희는 촬영 중 예상 밖의 난관을 만났었다고 한다.
"정말 피나게 연습했어요. 초반에는 좌절을 많이 했거든요. 사실 제가 기교가 많은 건 아니지만 목소리가 좋다는 말은 곧잘 들었어요. 그런데 발성이나 감정 표현이 연기랑은 다르더라고요. 감정을 담아서 가사를 전달하는 건 연기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르더라고요. 제가 완전 목석같이 부르고 있던 거예요. 그러다가 '에라이, 몰라' 하는 마음으로 불렀는데, 그게 괜찮았던 거예요. 노래를 즐겨야겠다는 마음으로 노래했고, 이제는 좀 맛을 알게 됐어요. 성악 영화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어요. 하하."
천우희. 사진/뉴스1
"여전히 아직도 연기가 최우선이에요."
'해어화'가 천우희의 수상 후 첫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관객들은 더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 분명하다. 이제 겨우 서른의 나이에 '천의 얼굴',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 그는 오롯이 연기만을 최우선의 목적으로 두고 달려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전 왜 이렇게 깊은 표현의 역할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힘들어 죽겠는데요. 연기를 하면서 순간 순간 비참해질 때가 있어요.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지경일 때도 있고요. 그래도 놓칠 수 없는 건 분명한 쾌감 때문이에요. 저는 평범한 사람인데, 연기할 때만은 생동감이 느껴져요. 연기를 하면서 세상과 만나는 것 같고요.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지만 연기만큼은 꼭 가져갈 거예요."
천우희의 심지는 그의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소위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들 할 때 그는 '해어화'와 '곡성'으로 18개월을 보냈다. 다른 부수적인 것보다 연기에 더 치중했다. '해어화'에 이어 의문의 살인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영화 '곡성'이 곧 공개된다. 예고편에서 잠시 나타난 그의 얼굴은 역시나 강렬하다. '황해'의 나홍진 감독과 만나 다시 한 번 변신을 시도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곡성' 홍보와 함께 천우희는 또 이윤기 감독의 신작 '마이엔젤' 촬영에 돌입한다. 평소보다 밝고 쾌활한 역할이다. 연기가 최우선이라는 천우희는 이렇듯 차근차근 작품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중이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