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총수일가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삼남매를 비롯한 경영진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등이 검찰에 무더기로 고발됐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은 16일 이들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된 배임 및 주가조작 혐의로 고발했다.
이에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합병 당시 주식매수 청구가격이 과소하게 책정됐다고 판결했고, 당시 국민연금의 정책결정도 정당한 판단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았다.
법원의 판결 직후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등 시민단체들이 국민연금공단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CIO, 기금이사)을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지난해 ‘경제애국주의 논란’을 촉발하며 강행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위해 주주가치를 훼손하고 국민연금의 손실까지 초래했다는 비난을 초래했다.
이번 고발장에는 삼성물산이 합병 전에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고 건설부문에서 추진하는 신규주택 수주규모를 1만여 가구나 축소·은폐하고, 2조원에 달하는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수주도 알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검찰수사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합병 전에는 향후 예상되는 상당한 규모의 사업실적을 의도적으로 축소 혹은 은닉하다가 합병 후에 공개해 주가를 끌어 올리려고 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이러한 석연찮은 과정을 통해 이재용·이부진·이서현 삼남매는 삼성물산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가 합병 이후 일거에 삼성물산의 대주주로 자리잡았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일반적인 투자원칙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드러냈다. 참여연대 등은 국민연금이 합병법인의 지분을 계속 보유하려는 주주라면 주가가 상승한 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하고 하락한 제일모직 주식을 매수해야 하는데 거꾸로 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에서 3155억원, 제일모직에서 2753억원을 합쳐 5908억원의 평가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검찰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서 삼성총수 일가와 국민연금의 위법행위와 책임의 정도, 손실규모가 규명되겠지만, 이번 고발에서 되짚어 봐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 삼성장학생·삼성 X파일·검찰 떡값 파문 등을 거치면서도 삼성그룹은 무소불위의 경제권력으로 군림한다는 눈총을 받아 왔고, 실제와도 부합한다는 것이 지배적 여론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지만 이번 고발로 3세경영의 기반을 다져 온 삼남매 모두가 도마 위에 올라 왔다.
둘째, 500조원이 넘는 기금을 운용하면서 주먹구구식 의사결정과 ‘마이너스의 손’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국민연금이 지난해 합병과정에서 보여준 과감한(?) 행보에 대해 ‘책임자’를 법정에 올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셋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서 향도적 위상을 가진 글로벌 삼성의 70·80년대식 꼼수와 사회책임투자(SRI)에서 차지하는 공적 연기금의 위상을 망실한 국민연금의 배임적 행태가 법적 다툼을 떠나 ‘다시 보는’ 기억재생이 이뤄졌다.
마지막으로, 불과 1년전 일이지만 워낙 망각이 빠르고 신상품 교체율도 세계최고 인 한국사회에서 정부·기업·언론·시민사회와 각 개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기억투쟁’을 재개한 것이다.
김병규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