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국내 드라마의 여주인공의 성향이 진취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존 국내 드라마의 '클리셰'로 여겨졌던 '신데렐라 스토리'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가난한 가운데 여성미가 있는 여주인공들이 재력이 있는 남성을 만나 보호를 받고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골자다. 최근 국내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은 최근 남성에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걸 크러쉬(Girl Crush, 여성들이 한 눈에 빠질만한 강렬한 매력을 가진 여성을 의미)' 성향을 내비치고 있다. 비록 부족한 점이 있지만,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 나가며 결국 성공해내는 '성장형 여주인공'들이 안방을 채우고 있다.
'운빨 로맨스' 황정음 스틸컷. 사진/MBC
MBC 수목드라마 '운빨 로맨스'에서 배우 황정음이 연기하는 심보늬는 부모님의 사망과 동생의 사고 때문에 미신을 믿게 된 캐릭터다. 상당한 재력을 갖추고 있으며, 자신에게 마음을 품고 있는 남주인공의 물질적인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옆에 있어주겠다"는 응원과 위로에 힘을 얻고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 드라마는 자극적인 장면 없이 잔잔한 사랑을 그려내며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종영한 tvN '또 오해영'에서 서현진이 연기한 오해영은 '흙수저'인 평범한 여자이지만 재력가에게 의존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짝사랑하는 박도경(에릭 분)을 향해 술주정을 하는 등 예쁜 척 없이 털털한 모습과 현실적인 얼굴을 보여줬다. 예쁘고 잘난 오해영(전혜빈 분) 때문에 늘 비교당하고 사랑에 치여온 오해영이 사랑을 하면서 조금씩 주위를 변화해가는 지점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또 오해영' 서현진 스틸컷. 사진/tvN
SBS '닥터스'의 박신혜가 맡은 유혜정은 다른 캐릭터들보다 더 화끈하다. 학창시절 반항아적인 모습이 가득했던 유혜정은 사람을 살리는 일에 감명을 받고 의사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의사가 된 뒤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내고, 당당히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하고 마는 타입이다. 최근 캐릭터 중 ‘걸 크러쉬’ 성향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성향을 가진 여주인공들이 더욱 등장할 전망이다. 오는 8일 첫 방송 예정인 tvN '굿 와이프'에서 전도연이 맡은 김혜경은 법대 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재원이다. 하지만 검사 남편 이태준(유지태 분)을 만나 평범한 가정주부가 됐다가, 남편에게 스캔들이 일어나자 생계형으로 뒤늦게 로펌에 입사한다. 커다란 굴곡 없이 살아온 김혜경에게 발생한 40대에 사회 초년병 시절이 어떻게 표현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굿 와이프' 전도연 이미지 컷. 사진/tvN
오는 20일 첫 방송 예정인 MBC 드라마 'W-두 개의 세계'에서 한효주가 맡은 오연주 역할 역시 당당함을 갖추고 있다. 이 드라마는 현실 속 사람이 웹툰의 세계로 소환된다는 판타지 로맨스다. 연주는 흉부외과 의사 강철(이종석 분)이 사는 공간인 웹툰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인물이다. 웹툰을 통해 강철의 습관과 성장배경, 상처 등을 꿰뚫고 있는 연주가 강철의 아픔을 치유해나가는 지점이 이 드라마의 줄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최근 여주인공 캐릭터들이 현실성을 갖게 된 배경에는 시청자들이 재벌 2·3세를 만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판타지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과 드라마 제작진이 점차 높아지는 여성들의 사회적 위상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는 점이 있다"며 "그러다보니 좀 더 자기 목소리를 내고 당당한 여성상의 캐릭터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