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략적 모호성 혹은 정치적 자폐증

입력 : 2016-07-18 오전 6:00:00
“사느냐, 죽느냐!”
 
이 질문은 햄릿의 네번째 독백이다. 문학작품이 인류에 남긴 가장 본질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영원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주인공 캐릭터가 갖고 있는 ‘전략적 모호성’ 때문일 것이다. 햄릿 전문가 임승태씨에 따르면 “복수를 위해서라면 조용히 기회를 노리면 될 것 같은데, 햄릿은 광인 행세를 하는 바람에 도리어 왕의 의심을 사고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 고귀한 캐릭터를 덧입힌 광기는 복수를 위한 생존전략이다. 중요한 행위의 동기를 지워버리는 ‘전략적 모호성’은 <햄릿>을 비롯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더 심오하게 만드는 핵심 기법 가운데 하나다. 문학작품에서의 이런 모호성은 해석의 여지를 풍부하게 만들어 독자들이나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에 의해 재창조된다. <햄릿>을 한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번만 읽고 만족한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전략적 모호성은 외교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외교에서의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이란 국가가 첨예한 이슈에서 전략적으로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위험부담을 더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미국이 항공모함에 핵무기를 탑재했는지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NCND 전략’을 고수한다든가, 중국이 주한미군 주둔에 대해 반대하지만 그 어떤 자리에서도 언급하지 않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해 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의 한국 배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3 No'로 압축해 표현한 적이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요청도 없었고(no request), 협의도 없었으며(no consultation), 결정된 바도 없다(no decision)"는 것이다. 이 당시엔 공론화 반대를 위한 모호성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돌연 정부는 사드의 한국 배치를 선언했다. 모든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기습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다. 외교적으로도 이런 속전속결은 매우 이례적이다. 국가적 이해관계가 걸린 중대사안에 대해 어떤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대해 가장 먼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은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다. 안 의원은 지난 10일 사드 체계의 성능 문제, 비용부담의 문제, 중국과의 관계 악화 문제, 전자파로 인한 국민건강 문제 등을 들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국가 중대사라는 점을 들어 공론화 과정과 국회 비준동의를 받을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3일 뒤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문 전 대표도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드 결정 과정의 3대 오류를 본말전도, 일방결정, 졸속처리로 규정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찬성론을 폈다. 남 지사는 사드는 국가주권의 문제이며 한반도 방어용으로 역할을 국한해야 하고 북핵과 운명을 같이해 북핵이 사라지면 사드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앵무새 입장’에서 한발 더 나간 찬성론이지만 현실성은 다소 떨어져 보인다.
 
사드 배치에 대해 새누리당은 찬성하고 국민의당, 정의당은 반대한다. 각각 나름의 입장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더민주의 한심한 태도다. 아직까지 당론조차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김종인 대표는 찬성에 가까운 입장을 밝히고, 우상호 원내대표는 당론을 정하지 않겠다고 한다. 현 시점에서 찬성, 반대 당론을 정하는 것이 정무적으로, 전략적으로 큰 득이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전략적 모호성이 등장한다. 내세우는 이유는 더 황당하다. 내년 집권이 목표이고 최우선 가치인데 집권 전후 당의 입장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집권 전후의 입장이 달라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나라의 장래와 국민의 안전이 우려되는 현안에 대해 입장을 갖지 않겠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더민주의 주장은 정치정당의 기본 소명을 망각하고 국민을 마치 외교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희귀하고 무책임한 궤변에 불과하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중·러의 반발 등 국제공조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는 소식과 대비해 보면 더민주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에 분노까지 치민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더민주’를 ‘덜민주’로 부르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난 이유다.
 
“사느냐, 죽느냐!”
 
정부·여당은 사드를 배치해야 산다고 한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그것이 죽는 길이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더민주는 살든지 말든지 우리는 집권만 하면 된다고 한다. 더민주가 주장하는 전략적 모호성은 정치적 자폐증에 걸린 제1야당의 ‘한심한 권력욕’에 다름아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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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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