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민기자]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과 윤상현 의원이 지난 총선 과정에서 공천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새누리당이 격량에 휩싸였다. 녹취록에는 두 의원이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하려는 김성회 전 의원에게 지역구 변경을 종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여파로 8·9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하던 서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19일 새누리당은 하루 종일 어수선했다. 이날 국회에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를 주제로 한 긴급현안질문 본회의가 예정돼 있었고, 그에 앞서 새누리당은 의원총회가 있었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총은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전체 의원 129명 중 60여명 정도만 참석했고 논란의 중심에 있는 최 의원과 윤 의원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정병국 의원과 주호영 의원, 김용태 의원 등은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 의원과 윤 의원의 공천 개입 사건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 의원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새누리당 일각의 계파 패권주의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어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당에서 진상조사를 실시해 조속히 이번 파문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 의원은 “공천 개입 정도가 아니라 거의 범죄행위 수준”이라며 “사법적으로 문제 될 여지가 있다면 수사 의뢰를 해서라도 사실 관계를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 김 의원은 “대통령을 판 그 사람들에게 국민도 속고, 대통령도 속으신 것이냐"며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서 의원의 측근인 이우현 의원은 의총 이후 기자들과 만나 “통화하는 내용을 녹취해 국민에게 공개하는 건 옳지 않다”며 “얼마나 비겁하냐. 남자의 세계에서 인간쓰레기 같은 행동을 한 것”이라고 김 전 의원의 녹취 행위를 비난했다. 친박 김태흠 의원도 “전당대회를 앞두고 갈등을 야기시키는 행동이고, 해당행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녹취록 공개로 계파 갈등이 다시 점화된 것이다.
당대표 출마 선언 초읽기에 들어갔던 서 의원은 끝내 불출마를 선언했다.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자신의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친박계가 조직적으로 나선 정황이 밝혀지면서 운신의 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서 의원은 “더 이상 전당대회 대표 경선 과정에서 제가 거론되지 않기 바란다”고 못 박았다.
서 의원의 불출마로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당초에는 서 의원이 출마함으로써 난립하는 친박계 후보들에 대한 교통정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었다. 아울러 서 의원에 맞서기 위해 비박계도 후보 단일화를 빠르게 진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서 의원의 불출마 선언으로 이 모든 프로세스는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말 그대로 백가쟁명식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구심점 역할을 할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당대표 선거가 지역별 선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친박계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친박계로 분류되는 후보들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주영 의원은 오래전부터 친박계와 거리를 두며 계파색 빼기에 여념이 없고, 이정현 의원도 친박 후보라는 것을 강조하기보다 배낭을 메고 전국을 돌면서 자신의 진정성을 알리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오른쪽)와 박명재 사무총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뉴스1
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