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세 여자환자가 2년 전부터 시작된 후경부 통증, 좌측 어깨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필자의 병원을 방문했다. 통증이 심해서 매일 진통제를 복용하지만 거의 효과가 없으며, 잠을 자기도 힘들 정도라고 했다. 통증은 간헐적으로 팔꿈치 근처까지 내려가기도 한다고 했다. 경추 4-5번 혹은 5-6번 추간판 탈출증 혹은 척추관 협착증을 의심하고, 확진을 위해 경추 MRI촬영을 시행했다. 그러나 일부 추간판의 변성과 팽윤만 관찰될 뿐 신경근 압박 소견은 찾을 수 없었다. 간혹 추간판 탈출증이 아니더라도 윤상인대의 손상(Annular tear)과 이로 인한 염증반응으로 상지에 방사통이 생기기도 하므로, 염증을 감소시켜 통증을 완화시킬 목적으로 경막외강 신경차단술(Cevical epidural block)을 시행하였으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경추 견인치료, 도수치료도 시도 해 보았으나 역시 효과가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증상은 계속 심해졌다. 환자의 통증이 디스크나 후관절 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경막외강 신경차단술을 시행했을 때 전혀 효과가 없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런 경우 치료 방법을 바꿀 것이 아니라 진단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임상의사들은 환자의 증상을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질환에 억지로 꿰 맞추고, 최선의 치료법 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치료법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환자가 3번 째 병원을 방문했을 때에서야 “이 환자의 통증이 일반적인 척추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겠구나”하는 의심을 하게 됐다. 그래서 환자의 병력, 직업, 수면장애 여부, 신체 다른 부위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등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환자는 목과 어깨 외에도 양측 골반, 무릎, 팔꿈치, 견갑골 주위에도 통증이 있었고, 소화불량, 수면장애도 호소하고 있었다. 특히 좌측 어깨의 특정 부위를 누르자 자지러지게 아파하며 몸을 움츠렸다. 이 환자는 사실 전형적인 ‘섬유근육통(Fibromyalgia)’ 환자였는데, 필자가 목과 어깨의 통증에만 관심을 두고 다른 증상은 무시하였기에 진단이 늦어졌던 것이다.
섬유근육통은 유병률이 2%에 이를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하지만 증상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MRI, CT 등 영상진단검사에서 특이소견이 없어 진단이 매우 어렵다. 이런 이유로 목 디스크, 혈액순환 장애, 심장병 등 다른 질환으로 오인되어, 불필요한 검사를 받고 심지어 엉뚱한 치료를 받게 되기도 한다. 섬유근육통은 만성 난치성 통증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질환이기에 통증을 치료하는 의사는 반드시 섬유근육통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섬유근육통에서 통증은 신체 여러 부위에 나타나며, 우울증, 불면증, 기억력 저하, 피로, 무기력증, 두통, 과민성 대장질환, 하지불안 증후군이 종종 동반된다. MRI, CT 등은 진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세한 병력청취, 철저한 신체검진과 신경학적 검진이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통증은 넓은 부위에 걸쳐서 타는 듯 하거나 화끈거리는 양상으로 나타나며, 심한 경우는 환자가 “신경을 갉아 먹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똑 같은 정도의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악화와 완화가 반복되며, 아픈 부위가 바뀌는 경우도 흔하다. 잘 살펴보면 신체 여러 부위에 ‘반응점(Trigger point, 세게 누르거나 잡아당기면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부위)’을 확인할 수 있으며, 반응점을 자극하면 신체 다른 부위에도 통증을 호소하는 ‘연관통(Referred pain)’도 흔히 나타난다. 또한 반응점을 세게 누르면 환자가 자지러지게 놀라며 몸을 움츠리는 것을 ‘Jumping sign’이라고 하는데, 섬유근육통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다.
섬유근육통으로 인한 통증은 NSAID계열의 진통제에 효과가 거의 없다. 효과가 검증된 약물은 Tramadol 등의 마약성 진통제, Amitriptyline, Fluoxetine, Duloxetine 등의 항우울제, Pregabalin 등의 항 전간제 등이다. 약물치료 외 치료법으로는 운동(Aerobic exercise), 수치료(Aquatic exercise), 광천요법(Balneotherapy), 심리치료 등이 있고, 일반적인 물리치료는 효과가 없다.
얼마 전 필자는 통증을 전공한 동료와 회식을 하다 한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섬유근육통을 쉽게 진단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대뜸 “환자가 아프다는 곳이 다섯 군데가 넘으면 일단 의심해 봐”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필자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 모두 어이없어 하며 웃고 말았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생각 해 보니 그 친구가 한 말이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아주 예리한 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질병을 진단함에 있어 ‘의심’만큼 중요한 것은 드물 것이다. 이 방법은 섬유근육통을 진단하는 데 있어 교과서적인 방법은 아닐지라도, 만성통증에 대해 경험이 많지 않은 의사들이 섬유근육통을 진단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통증환자의 병력을 꼼꼼히 확인하고, 철저한 신체검진을 할 자신이 없다면 적어도 환자가 아파하는 곳이 몇 군데인지 정도는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
◇ 최석민 인천 한림병원 척추센터 과장
- 중앙대학교 부속병원 전임의
- 중앙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신경손상)
- 광명성애병원 과장
- 명지성모병원 진료부장
- 명지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 자인메디병원 척추·뇌검진센터장
- 신경외과 학회 서울-경인지회 운영위원
-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자문위원
- 대한 뇌졸중 학회 정회원
- 대한 치매학회 정회원
- 대한 뇌혈관외과 학회 정회원
- 세계 뇌졸중 학회(WSO) 정회원
- 미국 뇌졸중 학회 (ASA)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