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알파고’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세계 바둑계 대표선수인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예상을 깨고 압도적 승리를 거둔 일은 인공지능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 바둑은 이미 인공지능이 인간에 승리를 거둔 바 있는 체스, 장기에 비해 훨씬 복잡한 게임이다. 경우의 수가 무려 10의 360승에 이른다고 하니 한 수 한 수 둘 때마다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야 할 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 조차 인공지능이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놀랍게도 알파고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과학발전의 쾌거라고 기뻐하며,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주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반면 혹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 상당수를 빼앗을 것이며, 인공지능의 발전은 결국 인류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일부 학자들은 인공지능이 발전하다 보면 스스로 자신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는 시기인 ‘싱귤래리티(Singularity)’가 도래할 것이며, 무한히 발전을 거듭한 인공지능이 결국은 인간을 통제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인간을 멸종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싱귤래리티는 인공지능의 나쁜 측면에 대한 극단적인 예인데, 모든 학자들이 싱귤래리티에 대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병을 대체할 인공지능 킬러 로봇, 인공지능 무인 잠수함 등은 이미 실전배치를 준비중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적과 아군을 구분한 뒤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각종 언론매체에 자주 언급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나 같은 외과의사도 언젠가는 인공지능 탑재 로봇에 의해 대체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 생산직 근로자, 전화교환원, 회계사, 운전기사, 군인, 간병인 등이 인공지능에 의해 없어질 대표적 직업군이라고 한다. 반면 치과의사, 외과의사, 예술가 등은 인공지능이 당분간은 대체할 수 없는 직업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최근 몇 년간 인공지능 관련 기술의 발전속도를 고려하면 외과의사도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수술을 하다 보면 갑자기 혈관이 터지기도 하고, 신경인지 혈관인지 구분이 어려워 촉감이나 과거의 경험에 의존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판단을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내려야 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과연 해 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이들은 아마도 인공지능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인공지능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각종 동작에 대한 지시뿐 아니라 기쁨, 슬픔, 사랑 등 뇌의 모든 기능은 신경세포간의 신호전달을 통해 구현된다. A라는 신경세포에 일정 수준 이상의 전압이 형성되면 말단에서 신호전달물질이 시냅스라는 신경세포간 간극으로 분비되고, 이는 B라는 세포의 수용체에 결합한 뒤 세포 내 전압의 변화를 유도하여 axon을 통해 전류가 흐르게 된다. 세포간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뇌의 모든 활동은 복잡한 전선줄을 통해 전달되는 일종의 전기적 신호전달 시스템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뇌의 모든 활동을 기계에도 구현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사실 최근에 개발된 것이 아니다. 195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미 두 번이나 인공지능 개발 붐이 있었으나 번번히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까지 인공지능 붐이 실패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인공지능이 방대한 자료에서 스스로 특징을 찾아낸 뒤, 그 특징의 정도를 파악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었는데, ‘딥러닝’으로 대표되는 ‘특징표현학습(Representation Learning)’이 그것이다. 덕분에 인공지능의 능력이 월등히 개선되었고, 앞으로도 무한한 성능 향상이 기대된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도 알고 보면 알파고가 딥러닝을 통해 계속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유럽 바둑대회 우승자와 대국을 했을 당시 비록 알파고가 승리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바둑 전문가들은 알파고의 실력이 이세돌 9단보다는 한참 뒤처지는 것으로 판단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은 알파고는 딥러닝을 통해 계속 발전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혹자는 이세돌 9단이 이번 대국을 통해 알파고의 특성을 어느 정도 파악했으므로 다음에 다시 대결한다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필자는 반대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이세돌 9단의 발전 속도보다 알파고의 발전속도가 훨씬 빠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알파고가 승리한 이후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인류의 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떠들어 대고 있는데 이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과장된 표현이거나 일시적 유행이 절대 아니다. 딥러닝은 단순히 인공지능 관련된 한 가지 신기술이 아니다. 딥러닝을 통한 독자적인 학습능력은 인공지능 역사상 가장 중대한 기술적 발전이며, 그 효과를 증명 해 보인 것이 바로 알파고의 승리이다. 외과의사가 시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기능을 통해 느끼고 판단하는 것뿐 아니라 수술 중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능력까지 모두 딥러닝을 이용한 학습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며, 인공지능 외과수술 로봇은 충분히 구현 가능한 일이다.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지금은 인공지능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쓸데없는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우리 모두 곧 닥쳐올 큰 변화에 대비해야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 인공지능의 윤리적 문제와 부작용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대비해야만 한다. 당연히 필자 같은 외과의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좋을까? 아직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우선 인공지능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