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올림픽)'주부 역사' 윤진희, 금보다 값진 동

입력 : 2016-08-08 오전 10:41:07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주부 역사' 윤진희(경북개발공사)가 값진 동메달을 품에 안았다.
 
윤진희는 8일(한국 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센트루 파빌리온에서 열린 역도 여자 53㎏급 경기에 출전했다. 인상 88㎏, 용상 111㎏, 합계 199㎏을 들어올린 윤진희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리우올림픽 역도 여자 53kg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윤진희. 사진/뉴스1
 
출발은 불안했다. 인상 1차 시기에서 88㎏을 들어올린 윤진희는 2차, 3차 시기에서 90㎏을 들어올리는 데 실패했다.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안간힘을 쓰며 버텼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윤진희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윤진희는 인상에서 중국 리야준(101㎏), 대만 쉬스칭(100㎏), 라트비아의 레베카(90㎏), 브라질의 산토스 로잔(90㎏)에 밀려 5위에 그쳤다. 필리핀의 하이딜린(88㎏)과는 동률을 기록했다. 메달 획득에 적신호가 켜졌다.
 
윤진희는 용상 1차 시기에서도 실패했다. 110㎏에 도전했지만, 들어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2차에서 110㎏을 성공한 데 이어 3차에서 111㎏을 성공시켰다. 바벨을 어깨까지 끌어올리는 클린(clean) 동작에 이어 양팔을 수직으로 뻗는 저크(jerk) 동작까지 깔끔하게 이어졌다. 윤진희의 인상, 용상 합계 기록은 199㎏이었다. 쉬스칭(212㎏)과 하이딜린(200㎏)에 뒤진 3위의 기록이었지만, 최강자 리야준의 차례가 남아있었다. 윤진희의 메달 획득은 불투명해 보였다.
 
하지만 운이 따랐다. 용상에서 112㎏만 들어도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리야준의 과욕이 화를 불렀다. 인상에서 올림픽 기록을 세운 리야준은 용상 1차에서 123㎏에 도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리야준이 바벨을 번쩍 들어올렸지만, 저크 동작 이후 리야준의 하체와 팔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심판 3명 중 2명이 실격 판정을 내렸다.
 
리야준은 여유를 부렸다. 용상 2차 시기에서 오히려 3㎏을 올려 126㎏에 도전했다. 그러나 리야준은 다시 한 번 바벨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던 리야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역도 종목에서 한 번 리프트를 시도한 바벨의 무게를 낮춰서 도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리야준은 마지막 3차 시기에서 다시 126㎏에 도전했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리야준은 바벨을 힘겹게 어깨 높이로 끌어올렸지만, 머리 위로 들어올리지 못하고 땅에 내려놨다. 강력한 우승 후보가 노메달에 그치는 순간이었다. 결국 금메달은 쉬스칭, 은메달은 하이딜린의 차지가 됐다. 윤진희는 동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윤진희는 동메달 획득이 확정된 순간 환하게 웃으며 기쁨을 누렸다.
 
윤진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인상 94㎏, 용상 119㎏, 합계 213㎏을 들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26세의 나이에 은퇴했다. 당시 윤진희는 역도 대표팀 후배 원정식(고양시청)과 결혼했고, 이후 두 아이를 낳고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지난 2014년 윤진희는 현역에 전격 복귀했다. 남편의 부상이 계기가 됐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69㎏급에 출전했던 원정식은 용상 경기 도중 부상을 입었다. 왼쪽 무릎 힘줄이 끊어지는 큰 부상이었다. 윤진희는 고통스러워하며 들것에 실려나가는 남편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 재활 과정에서 원정식이 윤진희에게 같이 역도를 하자고 권했다. 함께 역경을 이겨내자는 의미였다. 부부는 "우리가 바닥까지 내려갔지만,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자"고 서로를 격려했다.
 
윤진희는 리우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수확하면서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게 됐다. 원정식은 이날 경기장을 찾아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 리우올림픽 역도 남자 69㎏급 경기에 출전하는 원정식은 오는 10일 부부 동반 메달 획득에 도전한다.
 
국내 역도계는 최근 간판스타였던 사재혁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면서 아픔을 겪었다. 베이징올림픽 남자 역도 금메달리스트인 사재혁은 지난해 12월 강원 춘천시 근화동의 한 호프집으로 후배 역도 선수인 황우만을 불러내 주먹과 발로 얼굴 등을 때린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황우만은 광대뼈가 함몰되는 등 전치 6주의 상해를 입었고, 사재혁은 벌금 10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지난 2013년 장미란이 은퇴한 이후 세대 교체에 실패하면서 그의 뒤를 이을 만한 스타 플레이어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 역시 역도계의 고민거리였다. 리우올림픽 개막을 앞두고는 "역도 종목에서는 눈에 띄는 메달 후보가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두 아이를 둔 서른 살의 주부 윤진희가 금메달보다 값진 동메달을 따내면서 역도계에 한 줄기 희망을 안기게 됐다.
 
정해욱 기자 amorr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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