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각역 길거리 밤 여덟 시 반. 약속이 늦은 마당에 빗방울이 점점 옷을 적시고 있고, 역시나 길을 잘못 들었다. 급해. 핸드폰을 켜서 지도를 뒤진다. 아 맞네 저기로 건너면 되는구나. 한숨 돌리고 횡단보도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갑자기 발걸음이 멈췄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려나. 좀 참았다가 식당 화장실이 낫지 않을까. 아니지 식당이 술집일 텐데. 멈춘 발은 초조하게 보도를 지분거린다. 앞.뒤.좌.우. 두리번거리다 그럴듯한 상호를 빠르게 집어낸다. ‘한국XX연구원’. 윤이 나는 대리석에 큼직하게 박힌 금색 글자를 스캔한다. 로비에는 경비도 앉아 있다. 여기군. 

 

잰걸음으로 찾아 들어온, 하얀 타일로 도배된 공간. 양 끝 칸, 창문 있는 칸을 피해 한 곳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삐그덕- 쇠로 된 문고리가 뻑뻑하게 원을 그리며 걸쇠에 안착한다. 철컥. 단단히 걸렸다. 아, 바로 앉지 못하는 습관은 이럴 때 참 성가시다. 재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손가락을 들어 문고리를 가로지르는 문 틈새를 쓸어내렸다. 군데군데 휑한 느낌이 벌써부터 마뜩찮다. 허리를 낮춰 좁은 문틈을 살펴보니 역시나 솔이 빠진 구멍으로 문짝 너머 세면대가 훤히 보인다. 실격. 일어나 고개를 들고 이번엔 좌우 벽의 높이를 확인한다. 낮네. 바닥은? 옆 칸에서 주먹 하나 불쑥 내밀 수도 있겠다. 실격 실격. 투덜투덜. 번듯해 보이던 건물 전체가 갑자기 미덥지 못하다.

 

그래봤자 투덜투덜이다. 어차피 성에 안 찬다고 고고하게 다시 나갈 심산은 아니었다. 급하니까. 가방을 걸어 문틈 구멍 몇 개를 막아 본다. 덜커덕! 그거 좀 건드렸다고 문짝이 요란하게 흔들린다. 로비를 지나는 구둣굽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린다. 그러고 보니 경비실에 앉아 있던 사람이 제복을 입었었나.

 

얼른 나가야겠다.

 

털썩, 변기에 앉는다. 눈높이가 낮아지자 다른 것들이 보인다. 의심스러운 사물은 예민하게 탐색한다. 왼발 끝에 쇠로 된 쓰레기통이 있다. 툭. 거슬리니 한번 차본다. 보통 변기 뒤편 구석에 놓아두지 않나. 0.5평짜리 컴컴한 변기칸에서 굳이 영상미를 따진다면 나는 나를 여기서 찍을 것 같다. 시선을 피했다. 왼팔로 슬쩍 맨다리를 가리며 무릎을 오므린다. 힐끔. 폐달을 밟아 뚜껑을 여는 쓰레기통이다. 휴지더미 사이에 눈깔이 있어도 나를 보지는 못하겠군. 변변치 못한 안도감을 얻으며 서둘러 휴지를 뽑는다. 철그럭철그럭. 괜히 플라스틱 반투명 휴지걸이에 손을 집어넣어 흔들어 본다. 걸리는 것이 없다. 멋쩍게 일어나 휴지를 변기에 던져넣고 레버를 내렸다.

 

쏴아- 내려가는 물소리는 시원하지 않다.

 

세면대. 콸콸 쏟아지는 찬물이 손을 적신다. 손이라도 느릿느릿 열심히 닦았다. 대한민국 수영 국가대표가 찍었다는 몰카는 어디에 숨겨져 있었을까. 열쇠를 찾지 못하고 끝난 방탈출게임이 그렇듯 언제부턴가 공중화장실을 나오는 발걸음은 약이 오르고 분하다. 숨어 있던 투명인간은 불안에 떨며 주변을 티적거리는 모습까지 지켜보곤 멍청한 년이라 킬킬대지 않았을까.

 

손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내며 거울을 확인한다. 세면대 앞은 백열등에 불이 들어와 환하다. 어, 전구. 순간 뉴스서 보여준 듯한, 조감(鳥瞰)하는 몰카 화면이 머리를 스친다. 황망히 고개를 푹 수그리고는 이곳을 빠져나갔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