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노블레스 오블리주' 외면한 한국의 환경정책

입력 : 2016-09-19 오후 1:58:48
인류사의 대변혁을 이룬 발명품 중의 하나는 아마도 플라스틱일 것이다. 쇼핑백, 페트병, 일회용 용기, 신용카드, 튜브, 필름, 섬유, 스마트폰, 컴퓨터, 자동차 내부 등 생활용품에서 공업제품까지 플라스틱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했고, 상업상 성공 신화를 이뤘다. 이러한 플라스틱 소재의 역사는 놀랍게도 고대 이집트로 올라간다. 그 후 15세기 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카오추(눈물 흘리는 나무)라 부르는 인도고무나무를 여행 가방에 넣어 유럽으로 가져왔고, 1736년 두 명의 프랑스 박물학자가 아마존에서 천연고무를 발견했다. 이 천연고무로부터 1839년 미국인 찰스 구디어가 생고무의 가황기술을 발견했고, 1862년 알렉산더 파크스가 런던 세계박람회에 최초의 플라스틱제품인 파크신(Parkesine)을 출품해 현대 플라스틱 산업의 기초를 이뤘다. 2000년에는 앨런 히거와 앨런 맥디머드, 그리고 히데끼 시라카와가 전기가 통하는 고기능성 플라스틱을 개발해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이렇게 플라스틱은 최첨단 테크놀로지 산업으로 우뚝 섰다. 플라스틱은 그 성능과 가공의 유연성이 특출나 20세기 인류를 열광케 했고,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는 간편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인기 품목이 됐다.
 
그러나 지구는 플라스틱 홍수로 몸살을 앓는 대수난에 빠졌다. 인류문명의 진화는 편리한 일상을 제공하지만, 환경오염이라는 대재앙 또한 안겨준 것이다. 1950년 전 세계에서 배출된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은 150만 톤에 불과했지만, 2008년에는 2억4500만 톤으로 어마어마해졌다.
 
2013년 프랑스는 330만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했다. 그 중 18%는 리사이클 되었고 약 37%는 에너지를 만드는 데 활용되었지만, 45%는 쓰레기로 버려졌다.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는 대부분 바다로 유입돼 둥둥 떠다니며 ‘제8대륙’을 만들거나 잘게 부서져 물고기들이 먹으면 먹이사슬을 통해 고스란히 축척된다. 프랑스는 지구 살리기의 일환으로 올 1월1일부터 비닐봉지 사용 금지에 들어갔고, 오는 2020년 1월1일부터는 플라스틱 컵·접시·잔·포크 등 일회용 식기와 플라스틱 면봉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지난 8월30일 제정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녹색성장’을 위한 상품 선택과 프랑스인의 생활습관을 변혁하고자 제정된 이 법은 프랑스 정부가 지난해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파리 기후협약을 체결한 이후 친환경 선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발로이다.
 
그럼 한국의 플라스틱 쓰레기는 도대체 어느 정도고, 그 대책은 무엇인가. 2015년 해양환경관리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해양 쓰레기 중 55.6%가 플라스틱류로 해양오염의 주범이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공동체포럼에 의하면 올해 6개 해수욕장에서 3일간 수거한 일회용 연질 플라스틱 포장류는 4500리터로 지난 해(3900리터)에 비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일상에서 편리하게 마시고 버리는 테이크아웃 컵 등 일회용 음료 소비가 늘어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플라스틱 쓰레기가 늘면서 해양자원은 말할 수 없는 해를 입고 오염된 물고기를 먹은 인간의 생명은 위협받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모르쇠 정책으로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는 모양새다. 단지 2014년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제2차 해양 쓰레기 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앞으로 2018년까지 3319억 원을 투입해 해양 쓰레기를 관리한다는 방침만 내놓고 있다. 이렇게 정부의 대책이 고작 수거와 청소에 집중돼 안일하기 짝이 없다. 눈에 띄는 해양 쓰레기를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오염원 차단 정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경제 선진국, IT첨단 산업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이 환경문제와 생태위기를 대처하는 방식은 후진국 중의 후진국이다. 프랑스가 환경부 장관을 정부 서열 3위로 격상하고 지속성장 산업을 국가 중점산업으로 삼고 있는데 한국은 환경부 장관이 존재감도 없고, 더욱이 그가 추진하는 정책이 도대체 무엇인지 국민은 알 길이 없다. 문명의 발달 속에 편승해 한국은 눈부신 산업 발전을 이뤘다. 이 눈부심 속에는 환경파괴라는 어두운 희생이 자리 잡고 있다. 이 희생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을 외면한 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도 서둘러 지구를 좀먹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차단하기 위해 선진국형 처방을 내 놓아야 한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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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