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호기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회사 전체 업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전사적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시스템을 내년 초 도입하기로 하면서 시장에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삼성생명·화재 등은 보험 업계 처음 도입하는 이 시스템이 안착할 경우 무겁고 비대해진 보험 업무프로세스를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반면 원가 기반의 제조업형 ERP시스템을 관계형 영업 기반의 보험업에 도입할 경우 실적우선주의로 역행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2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생명(032830)과
삼성화재(000810)는 독일의 SAP사 소프트웨어 기반의 ERP 시스템을 내년 초 도입할 예정이다. 현재는 혹시 발생할 수 있을 프로그램 오류를 잡기 위해 일부 실제 업무에 적용해 테스트하고 있다.
이는 삼성그룹에서 삼성전자 등 비금융 계열사들이 ERP 시스템 도입한 효과를 보면서 보험계열사까지 확대 도입을 주문한 것이다.
삼성 보험계열사는 ERP 시스템이 완성되면 상품개발과 영업, 고객 및 계약관리, 원가 관리, 자산운용, 경영관리 등 회사 전반의 업무를 한눈에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계약 한 건 단위로 드는 수수료 비용과 원가, 자산운용 내용, 보험금 적립 등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ERP 시스템을 원가 절감과 자원 효율화 등 경영전략 수립에 쉽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만약 삼성보험계열사의 ERP 도입이 성공적일 경우 모든 보험사에 ERP가 도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원가개념이 없는 보험업에 ERP를 적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다. 특히 관계 중심의 영업인 보험업의 특성상 모든 것을 수치로 평가하는 ERP시스템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 모든 평가가 숫자로 이뤄지기 때문에 실적우선주의로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원가가 있는 제조사의 시스템을 보험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특히 보험 영업은 관계 중심인데 수치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업계의 우려처럼 새로운 ERP 시스템 도입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국내 SAP 전문가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로 대규모 인력이 투입됐지만 2012년 삼성 금융계열사의 ERP 시스템 구축은 백지화 위기를 맞았다. 생명보험, 손해보험, 카드, 증권 등 금융권역별 특성 차이가 뚜렷해 이를 아우르는 통합 ERP 구축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그룹은 금융계열사 통합 ERP 구축이라는 목표를 선회해 금융계열사별로 ERP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에 삼성카드는 이미 지난해 초 독자적으로 새로운 ERP 시스템을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9000억원에 가까운 자금지출도 문제였다. 새로운 ERP 시스템 도입을 위해 삼성생명은 4300억원, 삼성화재는 4500억원의 비용을 지출했다. 이 중 삼성생명 1561억원 삼성화재 1786억원의 비용을 계열사인
삼성에스디에스(018260)에 인건비로 지급했다. 새로운 ERP 시스템이 도입되면 유지·관리 비용으로 매년 200억원 정도의 비용이 소용되며 이 금액 역시 삼성에스디에스에 지급된다.
특히, 삼성생명의 경우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 도입으로 수조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40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지출한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삼성화재 측은 새로운 ERP 도입은 프로세스 최적화를 통한 효율성 확보와 글로벌 표준플랫폼 적용을 위한 해외 사업 확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다이렉트와 모바일 등 채널 다양화와 업무 시스템 증가, 고객·상품 증가 등에 따라 지속해서 시스템 규모가 증가하면서 유지비용이 증가하는 것으로 기존 시스템 유지·관리 비용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종호 기자 sun1265@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