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삼성이 애플에 지불한 배상금이 낮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미 대법원의 구두심리가 삼성 측에 유리하게 끝났다. 법정 분위기가 삼성에 우호적이었고, 애플도 전처럼 강경하지 않았다. 6년째 겨뤄온 특허분쟁의 최종 결전치고는 팽팽함이나 긴장감이 부족했다. 애당초 삼성이 배상금이 지나치다고 상고해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던 터다. 120여년 만에 디자인 특허 소송을 다루는 대법원은 이참에 낡은 법규를 손보겠다는 의도다. 애플도 앞서 삼성과 합의해 각 국의 소송을 정리하며 화해무드가 조성됐다. 이번 재판이 특허침해 여부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도 애플의 동기를 떨어뜨린다.
삼성과 애플은 1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구두변론을 진행했다. 이날 심리를 바탕으로 대법원은 연말이나 내년 초쯤 최종 결론을 낸다. 애플이 2011년 4월 처음 제기한 이 재판은 1심과 2심 모두 삼성전자가 패했다. 삼성전자가 침해했다고 법원이 판단한 특허는 검은 사각형에 둥근 모서리를 규정한 특허, 액정화면에 베젤을 덧댄 특허, 계산기처럼 격자 형태로 애플리케이션을 배열한 특허 등 3건이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는 애플에 3억9900만달러를 지불했다. 2010년 출시된 갤럭시S의 판매 이익금 전체 규모에 해당하는 액수다. 미국은 현행법상 제품의 일부 구성요소에서 특허침해가 발생해도 전체 제품의 가치나 이익을 기준으로 손해를 산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해당 특허가 스마트폰 가치의 1%만 차지해도 애플이 100%의 이익을 가져가게 된다며 부당함을 주장했다.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이날 구두심리가 열렸다.
삼성의 개시 변론 이후 대법관들은 삼성에 부과한 거액의 배상금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배상금을 낮춰줄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스마트폰은 20만개 이상의 특허기술이 어우러진 복합기술 제품”이라며 “3건의 디자인특허 침해를 이유로 판매 이익금 모두를 배상하도록 한 19세기 특허법은 첨단기술 시대인 21세기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대법관은 “차를 살 때, 심지어 비틀이라도 단순히 외관만 보고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동의했다. 정부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나온 법무부 차관보도 “법원은 소비자가 아이폰이나 다른 디바이스를 구매할 때 디자인뿐만 아니라 어떤 기능이 있는지 여러 요소를 따져본다는 사실을 고려해 배상금을 산정해야 한다”며 삼성 편을 들었다.
애플 역시 배상금이 줄어들 것을 어느 정도 각오한 모습이다. 애플 측 변호인은 배상액에 대해 배심원단이 판단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대법관들이 비틀의 외관이 차량 판매 이익의 90%를 끌어냈는지, 일부 디자인으로 스마트폰 이익금 100%를 배상해 주는 게 맞다고 보는지를 물었고, 변호인은 즉답을 피하다가 대법원장의 추궁으로 그건 아니라고 답했다. 구두심리는 1시간 만에 끝났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